뇌출혈이 일어난 후 미술에 푹 빠져 지내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영국의 토미 맥휴.-사진제공 네이처
존 트래볼타가 주연한 영화 ‘페노메논’(1996년 작)에는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섬광을 맞은 후 천재로 변신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물론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에 보고되는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1일자에는 토미 맥휴라는 노년기 남성이 어느 날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인한 극심한 두통을 겪은 후 전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례가 소개됐다. 그의 전직은 건설업자.
그런데 뇌수술을 받은 후 그는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그림과 조각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 인생은 100% 개선됐다”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런던대(UCL) 신경과학자 마크 리스괴 박사는 “뇌에 손상을 입을 경우 예술적 창조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미스터리인 상태.
고려대 교육학과 김성일 교수는 “평소 잠재돼 있던 예술적 취향이 사고로 드러난 것일 수 있다”며 “이를 두고 갑자기 창조성을 얻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뇌손상 환자가 예술적 충동에 빠진 사례는 학계에 심심치 않게 보고돼 왔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신경과학자 브루스 밀러 박사는 치매환자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례들을 1990년대부터 논문 20여편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밀러 박사는 치매환자 가운데 좌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부위에 손상을 입은 경우 미술적 재능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언어나 수학 같은 이성영역을, 우뇌는 시공간 인지나 예술과 같은 감성영역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밀러 막사는 “평소 좌뇌나 우뇌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세하고 다른 쪽은 열세인 상태”라며 “만일 치매에 걸려 좌뇌가 손상되면 우뇌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극히 드문 사례들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정재승 교수는 “영국에서 파킨슨병 환자에게 치료제를 투여하자 시(詩)에 몰두하게 된 사례가 2001년 소개된 적이 있다”며 “이런 연구들은 피카소 같은 예술가의 천재성이 뇌의 어떤 기능에 의해 실현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김훈기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