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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윤제림,“읍내 이발소”

입력 | 2004-07-16 18:25:00


읍내 이발소

윤제림

돼지들은 어디로 갔나

하면 된다 인자무적과 함께

범선들 어디로 떠 갔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함께

푸시킨과 함께

희수 아버진 어디 가 사나

이발소 닫아걸고 고깃밸 탔나

이발소 집어치우고 수리울 갔나

수리울 돌아가서

키워봐야 돈도 안 돼 먹어버리고

고기도 안 돼 묻어버리기도 하는

돼지나 치나 정말

풍랑에 속고 해일에 속으며

선주에 속고 과부에 속으며

배라도 타나 정말

미닫이 열면 장마당 훤히 내다뵈던

때절은 통걸상에 올라앉으면

옥좌에 앉은 기분이던

쇠전 나온 칠용아재 일본사람처럼

박박 깎고 가던

읍내 이발소

돼지들 어디로 갔나

콜롬부스나 마젤란의 배 같은 범선들

어디로 떠 갔나

희수 아버진 어디 가 사나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우경) 중에서

글쎄, 감쪽같이들 사라졌어요. ‘가화만사성’이라더니 돼지 부처들 열두 마리 새끼돼지들이 장성하자 ‘하면 된다’와 ‘인자무적’을 범선에 달고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구제역이며 도살장 없는 신대륙을 찾아간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평소 녀석들 울음도 수상했어요. ‘꿀꿀-’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을 찾는 소리?)

희수 아버진 정말 모르겠어요. 풍랑에 속고, 해일에 속고도 남을 순둥이니 평생 속고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으며’ 어딘가 잘 계시겠죠. 그나저나 24시간 회전등 돌아가는 거 말고 복고풍 ‘읍내 이발소’라도 한 곳쯤 있었으면 해요. 녹슨 바리캉에 머리칼 한 줌씩 뽑히면 눈물 찔끔 나도록 웃어도 보게.

정말이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저만치 그대로 있는데 우리만 떠나온 건 아닐까요? 이제 삶이 우리를 속이면 모두들 노여워하고 화를 내요.

반칠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