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를 살해한 이슬람 테러단체는 당초 김씨를 살려주는 요구조건으로 ‘한국의 이라크 파병 철회’를 내걸었다. 김씨 살해의 직접적인 이유가 자신들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김씨가 미 군납업체 직원이란 점에서 이슬람주의자 입장에서는 그를 미국의 ‘하수인’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씨가 이라크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려 해서 살해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처럼 정치적 요구와 종교적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구 사회는 이슬람주의자들을 ‘전 세계의 이슬람화’를 꿈꾸는 ‘광신도’로 간주하면서 이들의 정치적 요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동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종교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발흥한 것은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침략과 분할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본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슬람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는 조직들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동기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다만 이슬람 대중을 내부적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교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요소’를 테러의 직접적인 이유로 생각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종교와 함께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해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전후복구라는 단기적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할 게 아니라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치 경제를 한국인의 눈으로 재구성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그래야 세계평화의 이념,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익을 중동 지역에서 관철할 수 있다.
홍미정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