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유영철씨가 지금까지 20명이나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올해 초 발생한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등 10여건의 미제 사건과의 관련성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서남부 살인사건을 비롯해 상당수 사건을 내가 직접 저질렀다”고 진술했으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어 경찰은 추가 범죄 여부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수사가 진행되면서 유씨가 수사 과정에서 감시소홀을 틈타 달아났다가 12시간 만에 다시 검거되는 등 경찰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했던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
▽추가 범행 여부=특히 유씨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4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올 2월부터 다시 연쇄살인을 시작한 것으로 밝혀져 ‘공백기간’ 3개월의 행적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른바 ‘목요일밤 살해사건 괴담’으로 잘 알려진 서남부 살인사건은 주로 이 기간에 발생했고,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 등이 유씨의 살인행각과 유사하다.
하지만 유씨는 확인된 20명을 살해하면서 망치 등 둔기를 사용한 반면 서남부 사건 피해자는 모두 흉기에 찔리는 등 수법에서 차이가 난다.
유씨가 서남부 사건 등 추가 범죄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고 있고, 유씨의 범행과 관련된 수사 범위가 광범위해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유씨가 검거 직후 경찰 조사에서 4월 발생한 서울 구로구 고척동 여대생 김모양 피살사건과 관련해 “택시에서 내리는 여성을 뒤따라가 살해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로구에 설치된 서남부 연쇄살인 수사본부는 17일 수사팀을 유씨가 조사받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로 파견해 유씨를 직접 조사할 방침이다.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하지도 않은 살인을 했다고 말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기동수사대와 협조해 추가 조사를 거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에서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씨(뒷줄 가운데 비옷 입은 사람)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관들이 파묻힌 시신을 찾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채 이를 지켜본 유씨는 현장검증 내내 침묵을 지켰다.-사진 공동취재단
▽“놓칠 뻔했다”=한편 경찰은 희대의 살인범인 유씨를 검거했다가 유씨의 심리전에 휘말려 검거 초기 오판했을 뿐 아니라 감시소홀로 유씨를 놓쳐 하마터면 이번 사건이 영구미제에 빠질 뻔했다.
기동수사대에 15일 새벽 검거된 유씨는 검거 직후 “내가 22명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곧 “신문에 나면 이혼한 아내와 아들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 “TV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지어낸 말이다”고 번복하는 등 횡설수설했다. 게다가 전과 14범의 잡범인 데다 간질까지 앓고 있어 경찰은 진술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경찰은 이에 대해 18일 “유씨가 폭행 감금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엄청난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보였다”며 “간질증세를 보이고 횡설수설하는 용의자의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잡범이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라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다만 마사지사의 행방이 오리무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계속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씨는 15일 밤 12시경 조사를 받다가 3차례나 입에 거품을 물고 간질증세를 일으켰고, 현장에 있던 형사 2명이 유씨의 수갑을 풀어주고 물을 마시게 했다.
유씨는 그 뒤 형사들이 서류를 챙기는 틈을 타 방범창을 통해 수사대 건물 뒤편으로 도주했다. 이어 마포구 노고산동 자신의 집에서 옷을 챙겨 나온 뒤 여의도의 한 사우나에서 잠을 잤다.
경찰은 유씨가 도주한 직후 비상을 걸고 주요 역 등에 경찰력을 배치했고, 다행히 도주 12시간 만인 16일 오전 11시40분경 영등포역 부근에서 불심검문을 통해 유씨를 붙잡았다.
유씨는 당시 자살하기 위해 수면제 360정을 갖고 인천 영종도로 가던 중이었다고 진술했다.
그 직후부터 유씨는 자신이 저질렀던 연쇄살인의 구체적 내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를 우연히 다시 검거하지 못했다면 이 사건들은 영구히 베일에 가려질 뻔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