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유영철씨의 오피스텔에서 유씨가 “출장마사지사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한 화장실을 경찰관이 살펴보고 있다.-원대연기자
유영철씨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살인 행각은 개인적, 사회적 소외감 등이 맹목적인 증오로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경찰은 유씨의 범행동기를 부자와 여성에 대한 증오심, 질병과 사망에 대한 공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자와 여자에 대한 증오=유씨는 절도죄로 수감돼 있던 2002년 5월경 출장마사지사 일을 하던 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했고 아들(11)의 양육권도 빼앗겼다고 경찰은 밝혔다.
유씨는 지난해 9월 출소 이후 역시 출장마사지사로 일하던 김모씨와 3개월간 사귀다 청혼까지 했으나 전과자에 이혼남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절당했다는 것.
이후 유씨의 여성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졌고, 전처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아들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전처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여성 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유씨는 또 자신의 불우하고 빈곤한 처지가 부자들 때문이라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잘사는 집만 골라 부자들을 무차별 살해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와 함께 경찰은 아버지가 정신분열성 간질로 숨진 뒤 둘째형도 32세의 젊은 나이에 같은 병으로 숨지자 자신도 곧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세상을 비관했고, 막연한 복수심에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다는 충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장 배경=서울에서 노동을 하는 부모 사이에서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난 유씨는 중학교 1학년인 14세 때 아버지가 숨진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씨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모 공고 2학년을 다니던 중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다. 유씨는 이후 14차례에 걸쳐 11년 동안 교도소 등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했다.
특히 수감 중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뒤 말수가 줄어드는 등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또 1993∼1995년 간질병에 의한 정신질환으로 국립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유씨는 불우했던 환경 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꾸어 왔고 이에 대한 희망과 가족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유씨의 오피스텔에서는 ‘사진 속의 사랑’이라는 자작시가 프린트된 스크랩북이 발견됐다.
‘온가족이/모였었던 순간이었습니다/모처럼 많은 대화 나누며/웃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너무나 행복해/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았습니다/…어머니 품에 자식 모두를 안고 싶어/정말 힘들게도 겨우 모두를 안고 계셨습니다.’
한편 유씨는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할 당시 탈옥수로 유명했던 신창원씨와 수감생활을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신창원과 팔씨름, 달리기 등을 해 모두 이겼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으나 경찰은 “그런 진술은 없었다”며 공식 부인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피해자들 어떤 사람▼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바로 부유층 가족과 여성 출장마사지사들.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증오가 유영철씨의 주된 살해동기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자 20명 중 11명이 젊은 여성이었다. 이 중 6명은 출장마사지사, 1명은 전화방 도우미 여성이었으며 나머지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3명의 여성이 이름만 밝혀졌으며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성은 1명.
신원이 확인된 여성피해자들은 모두 20대이며, 비슷한 업종에서 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씨의 전 부인, 유씨가 이혼 후 교제했던 여성과 같은 업종이다.
경찰은 유씨의 휴대전화 통화명세를 추적해 유씨가 연락했던 출장마사지 업소에 문의, 실종된 여성들의 이름 등을 확인한 뒤 사진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유씨에게 보여줘 피해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잇달아 숨진 출장마사지사들은 공통적으로 불우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았던 여성으로 유족 등 친지의 소재도 잘 파악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 중 8명은 부유층 노인 및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적게는 40억원에서 많게는 80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씨는 금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들 두 부류의 피해자 이외에 올 4월 인천 중구에서 유씨가 살해한 노점상 안모씨(44)는 범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희생된 경우다. 유씨는 안씨를 살해한 뒤 승합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어떤 처벌 받을까▼
20여명을 연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영철씨는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극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형법 250조 1항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씨의 경우 토막 살인을 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등 그 수법이 잔혹하고 치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그의 혐의 가운데 일부만 인정되더라도 엄한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연쇄 살인의 경우 △1994년 부유층 5명을 살해한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씨 등 6명 △1994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귀가 중인 2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하는 등 6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2명을 살해한 후 자수한 온보현씨 등은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1998년 노인과 부녀자 9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모씨(대법원 계류 중)도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유씨가 법정에서 정신질환자로 인정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형법 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판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을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을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유씨가 이런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다는 것. 경찰은 유씨가 조사과정에서 간질증세를 일으키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인범을 정신질환자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구지하철 방화범의 경우 변호인이 정신질환을 호소했지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