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건 잡은 것 아니냐.”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씨가 검거된 후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간부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경찰이 검거한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자화자찬은 유씨를 놓쳤다가 12시간 만에 우연히 재검거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피해자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어떻게 잡나. 과거에도 대형 살인사건은 시민 제보를 통해 해결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사건해결에 대해 시민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다.
동아닷컴 등 인터넷 공간에는 “경찰은 제보 전화와 자백 외에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등 비난 여론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경찰관조차도 간부들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경찰 내부 전산망에는 “현장감식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기자들 불러 놓고 고백성사라도 하시는 겁니까?” 등 비난의 글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사건에 연인원 수만명의 경찰력을 동원하고도 사실상 수사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가 답보에 빠지자 점쟁이를 찾기도 했고 엉뚱하게 ‘피해자 가족’ 또는 ‘동성애자’가 범인일 것으로 추정해 수사를 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런 대형 미제사건이 잇따르면서 서울 시민은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5월부터는 ‘강남 일대 술집 종업원이 사라진다’는 일명 ‘강남 괴담’에서 서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잇따른 여성 살인사건인 이른바 ‘목요 괴담’이 나돌기도 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9일부터 본보에 ‘신(新)살인의 추억 악몽’이라는 연재물이 3회에 걸쳐 게재됐을 때 “왜 근거도 없이 소문에 불과한 그러한 괴담을 흥미성 위주로 기사화하느냐”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해도 실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언론만 원망하던 경찰이 이제 놓쳤다가 우연히 검거한 범인을 마치 대단한 공을 세운 것처럼 우쭐대고 있는 모습이다. 시민들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자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원수 사회1부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