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납치 공포 때문에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모하메드 아민 라드히(오른쪽)와 그의 가족.-사진제공 타임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 사는 소아과 의사 모하메드 아민 라드히(74)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공포와 함께 사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가족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폭탄테러와 납치 때문에 몸서리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는 라드히씨 가족의 삶을 통해 이라크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전했다.》
#목숨을 건 출근
바그다드 만수르 지역에 위치한 집에서 타리르 광장에 있는 라드히씨의 병원까지 거리는 5.5km 정도. 출근길에 나서는 순간 그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목숨을 내맡긴다.
걸어서 1시간 거리지만 택시로도 1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도로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된 데다 갑자기 폭탄테러라도 터지면 도로는 꽉 막혀버린다.
치안 불안 때문에 병원 진료시간을 일주일에 3일, 하루 3시간으로 줄였다. 가족들은 “퇴직한 데다 모아놓은 재산까지 있는데 왜 출근하느냐”며 매번 팔을 붙잡는다.
하지만 이라크전쟁 발발 이후 지식인들이 이라크를 떠나면서 현재 의사들이 태부족한 상태. 그마저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부유층을 노린 납치
만수르 지역은 고위 정치인들이 거주하는 부자 동네. 무장 경호원이 곳곳에 배치돼 치안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호원이 많은 지역이 테러범과 납치범들의 집중적인 타깃이 된다.
외신들은 외국인 납치 사건만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이라크 현지인이 납치된 경우는 수백 건에 이른다. 납치범들은 십중팔구 돈을 요구한다.
납치 공포 때문에 라드히씨의 부인 페리얼(62)은 외출할 때 승용차를 놔두고 택시를 이용한다. 결혼한 딸인 나프렛(38)도 남편 없이는 시장에 가지 않는다. 손자는 다니던 유치원을 지난해 그만뒀다.
지난해 가을 라드히씨는 어깨 높이의 담벼락을 150cm 더 높였다. 그 위에 철조망도 설치했다. 집안까지 침입할지 모르는 납치범을 막기 위해서다.
#유일한 낙은 TV 시청
사회기반시설이 부실해 집안일도 뒤죽박죽이다. 전기는 하루 4∼5시간만 들어온다. 그나마 몇 시에 전기가 공급되는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수돗물은 오전 1시부터 나온다. 이 때문에 새벽에 빨래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집에만 있다보니 아이들끼리 다툼이 잦아졌다. 운동을 못해 몸집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온 가족이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린다. 나프렛씨는 “집안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낙도 있다. 집에 있는 자가발전 전력으로 끝없이 TV를 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