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영화인
지난해 ‘볼링 포 콜럼바인’이 국내에 개봉됐을 때만 해도 마이클 무어 감독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무어 식의 유머로 표현하면 이 글을 쓰는 나만 빼고 말이다.
어쨌든 무어는 지금 굉장히 유명해졌다. 22일 개봉된 그의 신작 다큐멘터리 ‘화씨 9/11’은 전국적으로 무려 80여개 스크린을 확보했을 정도니까. ‘볼링…’이 서울에서 단 2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유명세에 힘입어 ‘화씨 9/11’ 같은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잘된 일이다.
하지만 유명세만큼 무어에 대한 오해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때와 같은 일이다. 이 자리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무어는 “Shame on you, Mr. Bush!”라고 말해 마치 시도 때도 없이 ‘튀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나 지적은 무어 본인에게는 다 ‘똥’ 같은 얘기일 뿐이다. (그는 분명 이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 뻔하다)
영화 '화씨 9/11'의 포스터
부시가 이끄는 정치집단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고 병사들이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고 있는 와중에 그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무어는 당당하게 떠벌릴 것이다.
그 떠벌림의 미학, 통쾌한 외침을 담고 있는 작품이 바로 ‘화씨 9/11’이다.
무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사실(fact)’을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사실 속에 담겨 있는 ‘진실(truth)’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진실은 종종 요란하고 시끌법석한 법이며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는 정치적 중립성보다는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해 간다.
실제 그의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정치꾼이라는 비난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 그리고 이번 ‘화씨 9/11’에 이르기까지 무어가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정치적 어젠다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가깝다. ‘로저와 나’는 자신의 고향인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가 겪고 있는 경제난의 원인, 그 실체를 추적하는 내용인데 문제의 핵심에는 포드자동차의 갑작스러운 공장 폐쇄 조치라는 대기업의 극단적 이윤추구 동기가 숨어 있음을 폭로한다. ‘볼링…’은 총기 소유의 위험성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 내 무기산업, 이른바 군산(軍産)복합체가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또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 ‘화씨 9/11’ 역시 ‘무기 장사’들이 자신들의 막대한 부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 일가와도 밀접한 사업관계를 맺어 왔음을 폭로하고 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화씨 9/11’은 9·11테러에 대한 총정리 다큐멘터리도, 반(反)부시·반미(反美)를 위한 다큐멘터리만도 아니다. 이 작품은 세상의 진실을 올바로 알리려는 다큐멘터리다. 세상의 진실쯤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무어의 이 같은 호통을 들을 것이다.
“Shame on you!!”
참고로 무어는 부시 대통령에게 한번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인 적이 없다. 그에게 부시는 여전히 고어에게서 대통령 자리를 훔친 ‘Mr. 부시’일 뿐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