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앙드레 김 패션쇼. 톱스타 이영애가 중국 의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조영철기자
15일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앙드레 김(69)의 패션쇼는 눈처럼 하얀 원피스 위에 투명한 비닐 코트를 걸친 모델들의 워킹으로 시작됐다. 옆으로 땋아 둥그렇게 말아 붙인 그들의 가발이 우윳빛 스타킹과 스트랩 구두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인민대회당에서 패션쇼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년 전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도 앙드레 김이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다. 그가 ‘패션 외교 사절’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톱모델 이종희가 입은 앙드레 김의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
○우아하고 지적인 여성
‘우아하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해 온 앙드레 김은 이번 쇼에서 톱스타 이영애와 이서진을 무대 위에 올렸다.
이영애는 흑백 스트라이프 무늬 실크 드레스와 연분홍색 시폰 드레스, 이서진은 앙드레 김의 트레이드 마크인 왕관이 가슴에 새겨진 흰색 슈트 차림 등을 선보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영애는 “상황에 따라 아네모네, 장미, 시크라멘 같은 여자”이다. 앙드레 김은 이번에 시크라멘을 닮은 빨간색 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그를 위해 만들었고, 이영애는 자신의 갈색 입생 로랑 염소 가죽 핸드백과 비취 목걸이를 단아하게 코디했다.
앙드레 김은 ‘전위적이고, 퇴폐적이고, 비교양적인’ 남녀를 싫어한다. 짙은 화장 또한 죄악시한다. 가벼운 피부 표현과 흰색 아이 섀도, 조심스럽게 빛나는 연갈색 립스틱으로 마무리한 이영애의 화장, 그것이 앙드레 김이 추구하는 ‘기품 있는 꾸밈’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영애는 앙드레 김과 종종 오페라 공연을 함께 관람한다. 공연장에서 노출이 심하지 않은 검은색 드레스를 차려 입는 이영애는 평소에는 흰색 면 남방과 발목까지 닿는 회색 롱스커트로 수수한 멋을 낸다.
1960년대 여배우 최은희를 시작으로 1970년대 윤정희, 1980년대 황신혜, 1990년대 김희선 등 당대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앙드레 김의 ‘우아한’ 무대에 섰다.
“지적인 여성들은 온화하고 친절합니다. 아아, 그 분들에게는 클래식한 감성이 있군요.”
○앙드레 김의 네 가지 코드
▽일곱 겹 베일의 전설=거의 모든 쇼에서 앙드레 김이 선보이는 ‘일곱 겹 베일의 전설’은 모델 한 명이 무대 위에 등장해 일곱 겹의 의상을 차례로 벗는 퍼포먼스이다.
베일에 가려진 듯한 여성스러움을 사랑하는 그는 이번에 중국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로열 블루, 꽃분홍, 에메랄드 그린 등 7가지 색상으로 동양적 신비를 풀어냈다. 그의 쇼에 단골로 출연하는 고참 모델 이종희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이 역할을 자주 연기한다.
▽남자 모델의 장화형 부츠=앙드레 김이 “지적이면서도 우수에 찬 독특한 이미지”라고 평한 이서진은 기존 패션쇼의 ‘꽃미남’ 남자 모델들처럼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형 가죽 부츠를 신었다. 앙드레 김에게 가죽 부츠는 남자의 당당함을 은유, 상징한다. 바지 포켓에 손을 집어넣지 않고 앞으로 동그랗게 모으는 행위는 에티켓에 속한다.
▽퓨전 배경 음악=앙드레 김은 모든 쇼의 음악을 직접 선곡한다. 이번에 모델들이 비닐 옷을 입은 오프닝에는 뉴에이지 명상 음악 ‘붓다 바’, 일곱 겹 베일의 전설에서는 국악인 김소희씨의 뱃노래, 이영애와 이서진의 애절한 러브신에서는 김범수의 가요 ‘사랑해요’, 웨딩 드레스로 마무리되는 엔딩에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사용했다.
▽황실적인 판타지=그는 옷에 커다란 왕관을 새겨 왔다. 술, 담배, 골프를 하지 않는 그는 ‘환상’ ‘무지개’ ‘애잔함’ 등 순정 만화류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환상적 이미지를 찾는 매개물은 TV 드라마. 요즘에는 ‘파리의 연인’에 심취해 있다. “파리의 모습이 판타스틱했어요. 1966년 그곳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을 때를 감격스럽게 떠올렸죠. 각박한 세상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좋은 드라마를 만나 행복하고 감사해요.” 40여 년 동안 170여회의 패션쇼를 열며 종합 예술로서의 패션을 창조해 온 앙드레 김의 장래 꿈은 자신의 이름을 딴 복합 문화 센터를 여는 것이다.
베이징=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