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아래로 300km 이상 펼쳐진 자작나무 숲. -지린=조성하 기자
《천지는 사방에서 오른다.
서·남·북은 중국, 동은 북한 쪽이다.
무슨 팔자 타고나 남들은 한 번도
해 거름 없이 오르느냐는 부러움 섞인
질문에 나는 어느 산악인의 현답을
빌려 그 난처함을 모면한다.
‘천지가 거기 있기 때문에.’》
대도(大道)가 무문(無門)이라면 거산(巨山)은 무형(無形)이다. 어찌 표현해도 제 모습 보여주기는 애초부터 불가능이다. 해발1000m의 광대한 용암대지 위에 솥뚜껑 하나 얹은 듯한 고원의 산악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도의 남쪽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고.
고원 위의 산체 면적만 전라북도만 한 8000여km²다. 그 기반인 용암대지까지 포함하면 이 산은 동서로 310km, 남북으로 200km다. 남한의 3분의 2쯤 될 것이다.
천지물이 흘러내리는 창바이폭포(낙차 68m). 7월 초인데도 눈덩이가 남아 있다. -지린=조성하기자
뚱뚱하면 큰 키도 무색한 법. 북한 백두(개마)고원의 대홍단(직선거리 70km가량)에서 보니 백두산은 두루뭉술하게 뭉그러진 둔덕 모습이다. 게다가 선 위치가 고도 1400m의 고원이다 보니 백두산은 해발 1300m급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니 백두산이란 근처에서는 그 거대함을 느끼기 어려운 산이다.
천지로 오르는 산악도로의 출발점은 중국과 북한이 좀 다르다. 해발 1000m의 산허리에 서·남·북 세 산문을 설치한 중국은 각 산문을 두루 연결하는 환상형 도로의 산문을 통과해 제각각 천지를 오르는 도로를 갖고 있다. 산문에서 천지까지는 50km. 북쪽과 서쪽은 분화구 밑까지 포장도로가 놓였고 천지까지 도로가 놓일 남쪽은 현재 공사 중.
백두산 여행의 진수는 해발 1000m 지점부터 2600m까지 이어진 산악도로를 버스로 오르내리며 이 산에 깃든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하는 데 있다. 그중 들꽃은 서·남쪽, 스키는 북쪽, 압록강과 압록대협곡은 남쪽의 진수다. 이깔나무(낙엽송) 숲의 천리수해(千里樹海)에서 사철 흰모자 쓴 백두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는 곳은 북한이고.
백두산에서 천지만 찾는 이는 바보다. 천지 아래 사방팔방이 모두 백두산 아닌가. 그러니 천지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라.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답고 진기한 풍경을 볼 것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반경 수백km 용암대지를 뒤덮은 거대한 숲의 바다, 백두임해(白頭林海)다. 나는 감히 말한다. 백두산의 진짜 모습은 바로 이 숲, 이 숲의 바다라고.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멍판잉 자연보호구 여유국장 인터뷰▼
“창바이산(백두산)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도록 북한과 공동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러려면 산의 자연환경을 더 잘 보존해야겠지요.”
우리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해당하는 지린성 창바이산 국가급자연보호구 여유국에서 북파(北坡·북쪽산악) 책임자인 멍판잉 국장(36·사진). 그는 3일 북파산문의 여유국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밝히고 “자연보호 의식을 진작시키는 생태기행(에코투어리즘)은 계속 추진하되 자연보호를 위해 입산객 수 제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린성 자연보호구 여유국의 ‘젊은 피’인 멍 국장은 5년 전 생태기행 개념을 백두산 관광에 도입해 전임지인 서파(西坡·서쪽산악)를 들꽃천지 트레킹 명소로 끌어올린 주인공.
“생태기행은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자연보호 의식도 일깨워주니 21세기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이란 개념에 맞지요.”
그는 백두산의 화장실도 ‘4성급’(최고수준)으로 개선, 꽃도 있고 소파에서 쉴 수 있는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천지연봉을 따라 산행하는 외륜봉 종주는 금지된 상태로 위반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면서 “후세에게 손상되지 않은 천지의 자연을 물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태평양, 백두사랑 캠페인 벌여▼
‘들꽃 사랑=백두산 사랑.’
산기슭이 온통 들꽃으로 뒤덮인 백두산의 멋진 풍경을 한 번이라도 본 이라면 이런 등식에 대해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두산으로 들꽃 찾아오는 이도 늘고 있다.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도 들꽃 트레킹에 몰려들기는 마찬가지. 백두산 서파는 산문을 연 지 꼭 10년 만에 들꽃 트레킹 코스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방문객이 늘면 자연은 훼손되기 마련.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백두산은 그런 인화를 피했 다. 지린성이 초창기부터 생태기행 개념을 도입, 백두산 자연을 지키는 데 노력해 온 덕분으로, 그 주체는 창바이산 국가급자연보호구 여유국이다.
한국 기업도 백두산 보호에 동참했다. 그 첫번째는 화장품 회사인 태평양. ‘들꽃박사’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을 통해 우리 들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다양한 사업을 벌여온 태평양은 김 소장이 이끄는 한국야생화연구회의 이번 백두산 들꽃답사를 전면 지원했다. 또 창바이산 국가급자연보호구 여유국의 백두산 자연보호에도 동참, 자연분해되는 쓰레기수거용 비닐봉투를 직접 제작해 지난달 29일 수만장을 전달하고 북쪽 산문에서 캠페인도 벌였다.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백두산 서쪽에서 오르는 들꽃 트레킹은 6∼8월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서·북쪽을 오르는 4박5일 패키지 상품이 108만원. 월드탑여행사 02-2282-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