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책으로, 다시 영화로.
인터넷 연재소설의 폭발적 인기로 대중문화의 새 코드로 자리 잡은 ‘귀여니’(본명 이윤세·19·성균관대 1년)의 ‘신화’가 스크린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23일 나란히 개봉하는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
●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유전자’는 동일하다.
‘그놈…’과 ‘늑대…’에 등장하는 예원(정다빈)과 한경(이청아)은 외모와 성적은 별로지만 성격만은 좋은 평범한 여고생들이다. 동화 속에서 신데렐라를 구원했던 왕자는 영화 속에서는 ‘킹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이들은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모범생이 아니라 ‘얼짱’ ‘몸짱’ ‘주먹짱’에 ‘싸가지가 없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하지만 킹카의 운명은 ‘평범녀’를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선, 절대적 순애보에 맞춰져 있다. 한 사람도 모자라 복수로 등장하는 킹카들과 여주인공의 삼각관계가 깊어지면서 신데렐라 스토리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물론 약간의 변주는 있다. ‘그놈…’은 아버지가 에이즈로 죽었다는 은성(송승헌)의 가족사를, ‘늑대…’는 이복누나 한경에 대한 태성(강동원)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복선으로 등장시킨다.
● 영화의 킹카 만들기
인터넷 소설이 영화로 탈바꿈하면서 공들인 것은 다름 아닌 킹카의 캐릭터다. 10대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은 원작의 높은 인지도와 이들이 선호하는 강동원 조한선(‘늑대…’) 송승헌(‘그놈…’) 등 스타를 결합시키는 상업적 전략이다. 원작에서 10대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담았지만 정체성이 모호했던 ‘그놈’과 ‘늑대’들은 영화 속에서 스타의 ‘얼굴’을 빌려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두 작품은 드라마를 상당 부분 포기하는 대신 뮤직비디오의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구축에 전력을 기울였다. ‘늑대…’에서는 홍콩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빗속 액션과 오토바이 질주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놈...’의 은성 역시 거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두 영화에서 ‘왜 너를 사랑하나’의 ‘왜’라는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사랑을 거친 화법으로 표현한다.
“휴대폰 씹으면 죽는다.” “내 입술 부빈 년은 니가 처음이야. 너는 내 마누라.”(은성)
“문자 씹으면 죽구, 전화 안 받으면 더더욱 죽는다.”(해원·조한선 분)
● 스타의 눈물
올해 초 개봉된 ‘어린 신부’는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하며 10대의 무시할 수 없는 ‘티켓 파워’를 보여줬다. ‘하이틴’도 아닌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에 이르는 ‘로틴’ 영화의 가능성까지 엿보였다.
하지만 두 영화의 10대를 향한 노골적인 ‘구애’는 꺼림칙하다. ‘닭살’ 캐릭터, ‘유리구두’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상, 드라마는 사라지고 그림만 남아 있는 영화, 애교를 넘어선 유치함…. 과연 10대 영화 팬들이 바라는 것이 이런 것들일까?
특히 ‘늑대…’의 강동원은 최근 몇 년 새 개봉한 영화의 남자 주인공 가운데 가장 자주, 많은 눈물을 흘린 배우일 것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전통적인 카리스마만으로 부족해 ‘스타의 눈물’까지 필요했던 셈이다.
흥행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우려되는 것은 영화계가 10대의 취향을 유치하거나 조악한 것과 동일선상에 둔다는 점이다. 10대든 20대든, 더 나이든 관객이든 잘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