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외의 유명 뮤지컬 작품들이 국내에서 속속 막을 올리고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토요일 밤의 열기’ 등이 공연되고 있고, ‘지킬 앤 하이드’ ‘미녀와 야수’가 곧 공연될 예정이다. 얼마 전 대성공을 거둔 ‘캐츠’와 ‘맘마미아’까지 포함하면 요즘 마치 뮤지컬의 봇물이라도 터진 듯하다. 오페라도 적잖이 무대에 올려진다. ‘아이다’ ‘투란도트’에 이어 현재 ‘리골레토’가 공연 중이다.
외국에 가야만 볼 수 있던 작품들을 국내에서도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데에 있다. 관람료가 수십만원까지 하니 가족이 함께 가면 웬만한 월급쟁이 한달 봉급의 반은 든다. 그러니 서민에게 이러한 공연 관람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고급 공연작품을 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인생의 큰 꿈을 꾸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고급문화를 맛보여 줄 수는 없을까. 저급 대중문화에 젖어 있는 그들에게 품격 있는 공연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공연작품은 영화관같이 싼값에 단체관람할 수도 없고, 조조할인해 구경할 수도 없고, 휴대전화 카드를 이용해 할인받을 수도 없다. 대형 공연작품 제작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주어야 하고, 훌륭한 시설을 갖춘 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려야 하고, 유명한 배우를 써야 하기 때문에 관람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력만 한다면 고급 공연작품의 대중화도 충분히 가능하다. 꼭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 꼭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람료를 인하하도록 문화관광부가 국민 문화교양의 진흥 차원에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청소년의 단체관람을 주선하면 어떨까. 크고 작은 기업들이 나서서 가난하고 어려운 청소년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 기획자와 제작자의 의식이다. 그들이 움직여야 한다. 자신을 문화를 파는 세일즈맨이라고 생각한다면 공연 문턱은 계속 높을 것이며 그렇지 않고 자신이 문화예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라고 생각한다면 입장이 아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일본 예술가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 예술가의 작품을 집에 걸어 놓고 보는 것이 가난한 서민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작가의 작품은 워낙 비싸고 귀해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아차린 예술가는 자기의 작품을 목판화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서민이 즐겨 먹는 우동 한 그릇 값에 불과한 가격으로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하나씩 집에 걸어 놓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고흐와 고갱을 열광시켜 19세기 유럽에 자포니즘을 불러일으킨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다. 이렇듯 예술가는 자기의 작품을 간절히 원하는 서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예술작품을 교육적으로 선물할 줄 알아야 한다.
모처럼 활짝 피어난 공연예술이 서민들에게서도 사랑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백형찬 서울예술대학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