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실적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지면서 실적과 주가수익비율(PER)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실적이 좋은 기업은 주가상승률도 높아 평균적으로 그 기업의 PER가 상승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등식이 잘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低)PER’는 한국 증시의 트레이드마크=22일 증권거래소가 2000년 이후 코스피200 종목의 실적과 주가를 조사한 결과 2002년 이후 실적이 뚜렷하게 좋아지고 있는데도 주당순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PER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코스피200 종목의 PER는 2002년 말 15.22배에서 작년 말 11.83배로 낮아진 데 이어 이달 21일 현재 11.74배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실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평균 PER는 21일 현재 19.7배, 영국 런던 증시의 FTSE100지수는 14.7배로 모두 코스피200 종목에 비해 PER가 높았다.
서울 증시의 전체 상장종목 PER는 더욱 낮아 거의 세계 ‘꼴찌 수준’이었다. 세계증권거래소연맹(WEF)이 46개국 52개 회원 증권거래소의 PER를 작년 말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자료를 제출한 43개 거래소 중 한국 증권거래소는 41위를 차지했다. 한국 증시의 PER는 브라질 상파울루(8.4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8.0배)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10.1배에 그쳤다.
▽저PER가 나타나는 이유=증권전문가들은 ‘저PER’에 대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은 수준이니 앞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로 분석해 왔다. 증권사들이 추천하는 투자유망종목군에서 ‘저PER주’는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저PER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평가됐으니 상승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니라 ‘저평가될 만한 이유가 있다’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주가 수준은 실적과 수급(需給), 정보, 심리 등 4가지 요인으로 결정되는데 한국 증시에선 실적을 제외하곤 나머지 3가지 요인이 받쳐주질 않는다”고 말했다.
홍춘욱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PER가 낮은 것은 투자자들이 국내 기업의 실적 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다우존스지수에 속하는 30개 기업들은 매년 20%대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유지한 결과 PER 수준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주가수익비율▼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으로 주가가 주당 순이익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기업실적(순이익)이 주가에 반영된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주가 수준의 판단에 활용된다. 흔히 PER가 낮으면 저평가, 높으면 고평가됐다고 말한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