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이 청(淸)제국을 세웠을 때 한족(漢族)의 눈에는 실력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미숙한 신진세력의 발호로 보였을 것입니다. 지배자 쪽에서는 그런 한족이 시대의 흐름도 읽지 못하는 수구세력으로 보였겠지요.
‘반역의 책’(B1)에 등장하는 옹정제와 쩡징은 각각 두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역모 죄로 체포된 쩡징을 옹정제는 놀랍게도 편지로 설득합니다. 반대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도 있지만 저변에 흐르는 민심의 물결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반대세력을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는 21세기 한국 사회는 300년 전의 중국에 비해 얼마나 나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격언은 저널리스트라는 일개 직업만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은 아닌 듯합니다. 인간에 대한 지배력은 무력이 아닌 정신의 지배에 의해 실현된다는 사실을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으니까요. ‘빌라도의 예수’(B7)에서 작가는 유대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지만 예수의 정신적 그림자에 갇혀버리는 과정을 그립니다. ‘사실(史實)’이 아니라고요? 사실은 더 웅대할지 모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지배 체제’인 로마제국 전체가 그를 섬기게 되니까요.
오늘날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정복한 미국. ‘전쟁은 정당했다’고 이라크 국민과 전 세계를 설복시키는 일은 전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투라의 일기’(B3)를 읽으며 떨치지 못한 생각입니다.
책의 향기 팀 b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