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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집수리 봉사활동 정순영씨

입력 | 2004-07-23 19:09:00

2000년부터 어려운 이웃들의 집수리를 도와온 ‘집수리봉사단’. -강병기기자


매주 토요일 새벽, 서울 은평구청 청소과 차량 운전사 정순영씨(54·서울 은평구 응암1동)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공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집수리 자원봉사단’ 동료들과 함께 독거노인, 모자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의 집을 고쳐 주기 위해서다.

정씨가 집수리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 2000년 9월 화재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었을 때 도와준 이웃들이 고마워 자신도 주변 사람을 도우며 살기로 결심했다.

“화재 당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이웃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그때부터 이웃에게 10배, 100배 보답하는 마음으로 저도 주변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씨는 이후 동료들을 설득해 주말마다 집수리 자원봉사에 나섰다. 봉사의 특성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로 건축 관련 기술 자격증 소유자들을 골라 팀을 꾸렸다. 정씨 자신도 봉사를 위해 공조냉동기능사, 보일러 시공 등의 자격증을 땄다.

그는 “처음에는 몇 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30명으로 늘어났다”며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지만 50대가 많아 마음이 잘 통한다”고 말했다.

이 봉사단에 동참하고 있는 박경구씨(61)는 “정씨가 남을 도우면 좋은 일 생긴다면서 자기 돕는 셈치고 참여해 달라고 했다”며 “비슷한 또래 노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보람있다”고 말했다.

한 집을 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이틀에서 5, 6주까지. 처음에는 각자 주머니를 털어 공사비용을 마련했지만 이들의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구청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정씨는 “주말 내내 일하고 나면 월요일 아침에는 눈이 잘 안 떠져 찬물로 눈을 비벼야 한다”며 “웬만한 막노동하는 분들도 힘들어 보인다고 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다”며 씩 웃었다.

집수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의 경우 대부분 높은 지대에 살기 때문에 무거운 건축 자재를 들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할 때도 많다는 것.

하지만 “정말 큰 선물을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웃을 대하거나 “내가 줄 것은 이것 뿐”이라며 음료수를 사다 주는 아주머니를 보면 피로가 금세 사라진다.

정씨는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아들(29)이 집수리 봉사를 이어 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며 “재산은 못 물려줘도 봉사정신과 기술은 물려주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