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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존경하는 리더]김정태 국민은행장

입력 | 2004-07-25 18:46:00


한국에서 현직에 있는 자신의 상사를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존경한다고 말하기란 외람되고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최고경영자는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사진)이다.

필자가 김 행장을 직접 경험한 것은 1999년 가을 대우그룹 사태가 터졌을 때였다. 당시 김 행장은 대우 사태로 인한 채권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30조원 규모로 조성된 채권시장 안정기금운영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필자는 기금의 운용부장이었다.

김 행장은 필자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전문가이니 알아서 잘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기금을 운용하던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업무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던 것. 금리가 오를 기미가 보이고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기금 조성에 참여한 금융회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압력에 가까운 주문을 쏟아냈다. 일부는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김 행장은 실무자들이 일하는 데 방해된다며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금 운용 사무국 직원들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수 있었고 6개월 뒤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었다.

필자는 KB자산운용을 5년 동안 이끌어오면서 당시에 체험했던 ‘믿고 맡기기’를 회사 경영 여러 부분에 도입했다. 그 결과 회사는 역동적인 조직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한다.

철저한 시장 중심과 주주 가치를 역설하면서도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고 주말이면 농장에서 흙과 함께하는 김 행장의 생활태도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회사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인다. 이들은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공부와 훈련을 통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리더를 뛰어넘는 ‘최고의 리더’가 되려면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김 행장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

국민-주택은행 및 국민카드 합병, 새로운 영업점 시스템 도입 등 국민은행의 흥망을 좌우할 만한 굵직굵직한 일을 처리하면서 보여준 김 행장의 정확한 판단력과 불굴의 추진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김 행장이 거둔 성과가 운이 좋아서라거나 주위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시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오랜 습성에서 얻어진 결과이다.

김 행장은 요즘도 신문을 읽으며 중요한 기사나 칼럼을 빼놓지 않고 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또 애널리스트들이나 투자자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한국에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려는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백경호 KB자산운용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