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머지않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이를 기점으로 ‘노무현형 대북(통일)정책’이 등장할 것 같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런데 현 대북정책의 수위를 뛰어넘어 남북의 정치적 삶의 틀까지 흔들 만한 내용이 정상회담의 주제가 되고 이어 새로운 통일정책이 제시된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이미 우리 사회의 보-혁간 분열상황은 극에 달했으며, 이는 ‘노무현 정통지지세력’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좌파의 ‘평화이상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 9·11테러와 미국의 ‘반테러전쟁’ 수행, 노무현 정권의 탄생 등 지난 5년 동안의 대내외적 변화 과정과 연동돼 우리 사회를 강타한 대표적 이데올로기와 운동은 ‘통일 민족주의’와 ‘평화지상주의’다. 이 두 열기는 대북정책의 성과에서 존립의 정통성을 구했던 한국정부를 도왔고 긴장완화와 민족의 재인식에도 공헌한 점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 관료까지 북한정권의 ‘민족공조’ 전략의 속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극복되어야 할 북한의 독재체제’와 ‘온존돼야 할 북한 민족’이라는 양자를 구분하는 이성적 분별력을 잃게 했다. 급기야 ‘남북관계 훼손 가능성’을 내세우며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을 저지하자는 국회의원까지 생겨났다. 대북정책 추진의 궁극적 목표가 북한체제의 근본적 변화인데도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의 변화만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평화이상론의 열병의 결과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한 소위 386세대 중심의 신진 사회세력과 현 집권세력간의 특수 역학관계로 인해 우리의 국가적 중대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서유럽 국가들의 정치구조를 변화시켰던 ‘자유주의 좌파(libertarian left)’의 한국적 부활이 소위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유사 자유주의 좌파 세력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 마르크시스트 좌파와 차별을 두면서도 서구에서처럼 국가주의, 성장주의, 관료제적 권위주의를 배격하며 실천적 차원에서 기득권 타도와 참여정치를 주창했다. 이들 신진세력은 민족주의와 평화이상론의 공유라는 바탕에서 제도권의 노무현 후보 지지세력과 동맹관계를 형성했고, 현재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정부와 여당의 주요 부문에 포진해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들 자유주의 좌파의 지지를 계속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 노 대통령은 이들의 대표가 아닌, 전통적 국가주의 가치에 존재 기반을 두는 정부 관료제의 수장으로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세력은 자의적 적용 범위를 갖는 이데올로기의 속성 때문에 실천적 차원의 남북관계 의제가 논의되기 시작하면 친북 성향부터 극우 성향에 이르기까지 사안에 따라 분열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극좌 대 극우의 사회적 분극화에 가세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국가정체성 흔들리지 말아야▼
최근 남파간첩 출신자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 간첩연루자의 군 고위 장성 조사, 과거사 관련법안에 대한 집착, 북한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시 군의 대응에 대한 비판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연계돼 최근 ‘국가 정체성 훼손’ 비판이 일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대북정책 추진시 대통령의 본심과 관계없이 보수층의 극단적 의구심과 저항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조짐이다.
이렇듯 복잡한 사회세력구조 속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노무현 통일정책’이 추진될 수밖에 없기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내 사회의 통합기반 조성과 분열정치사회에 대한 국가의 조정통제력 강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 통합적 기반의 핵심은 우리 ‘국가의 틀’과 국가의 가치에 대한 대통령과 국민의 애정과 존중이며, 민족과 평화개념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교육과 학습이다.
김동성 중앙대 정경대학장·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