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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권리침해 입법’도 개혁인가

입력 | 2004-07-26 18:46:00


여야 의원과 정부가 개혁을 명분으로 발의한 법안 중 상당수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을 무시하고 사생활을 해치거나 현행법 및 헌법에 배치되는 법안이라면 아무리 개혁의 명분을 내세워도 정당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세탁방지법’의 경우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를 무차별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상의 금융거래 비밀보호조항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은 공직자 재산 취득과 형성과정을 공개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공직자 및 그와 관련된 제3자의 재산권과 사생활을 제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의문사진상규명법, 6·25 이후 민간인희생사건진상규명법 등 ‘과거사’ 관련법은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로 현행법과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들 법안이 도입한 영장 없는 동행명령제는 개인의 의사에 반(反)한 강제적 동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 의문사진상규명법은 또 조사대상이 된 사건의 범법자에 대해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는 헌법 13조 ‘형벌불소급’ 원칙에 맞지 않다.

개혁의 당위성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인권에 반(反)하거나 헌법이 정한 틀을 벗어난다면 결코 ‘개혁입법’이라고 할 수 없다. 개혁이 현 정권의 최대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추진되는 이 같은 법안은 자칫 개혁으로 포장된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우려가 없지 않다. 이는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부추길 뿐이다.

법은 국민이 편하고 공정하게 살 수 있는 틀이 되어야지 멀쩡한 사람까지 옥죄는 그물이 돼서는 안 된다. 진정 개혁을 위한 법을 마련하려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범주 안에서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 민주적인 법절차를 통해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