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 ‘북한 인권법안’ 통과 움직임에 대해 ‘미국 내부의 문제’라며 대응을 자제하던 열린우리당의 기류가 ‘의사 표명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당 지도부는 미 하원이 북한 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직후 당 소속 정봉주(鄭鳳株) 의원이 “미 의회의 북한 인권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튀는 초선의원의 ‘의욕 과잉’으로 치부했다. 당 지도부는 ‘무대응이 상책’이라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한 26일 통일외교통상위 및 제1정조위 소속의원 간담회는 “인권법안 내용이 심각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북한 인권법이 미 상원에서마저 통과될 경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물론 북-미간 치명적인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이 심각하게 간주하고 있는 대목은 ‘향후 대북 협상과정에서 인권 문제를 비중 있는 준거의 틀로 삼아야 한다’는 법안 내용과 북한 민주주의 및 주민들의 외부정보 접근 확대, 탈북자 프로그램에 2005년부터 4년간 9600만달러(약 1150억원)를 지원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원 방안.
이 같은 내용은 북의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결 분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열린우리당의 인식이다. 특히 북한의 주민들의 외부정보 접근 확대나 탈북자 지원 방안은 북한 정권의 조기붕괴를 유도하려 한다는 북측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은 일단 이 문제가 한미간의 외교적 현안으로 부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조용한 외교’를 통해 미 의회에 열린우리당측의 우려를 전달할 방침이다. 자칫 한미동맹 관계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국내 보혁 갈등 촉발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통외통위 간사인 유선호(柳宣浩) 의원과 정봉주 최성(崔星) 의원이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북한의 인권개선에 관심을 표명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접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열린우리당의 곤혹스러운 입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북한문제 전문가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 초청 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임채정(林采正) 통외통위 위원장은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면 북한이 반발할 것이 뻔한데 우리로서는 성명서를 내 비판할 수도 없고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라며 “상원에서 인권법이 통과될 것인지 솔직히 걱정스럽다. 미국에 돌아가면 미 의원들에게 잘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