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가장 큰 소망은 친구를 갖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고,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친구는 없었다.
상담이 시작되고 3개월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함께 읽은 책이 바로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었다. 주인공 ‘올렌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학생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 여자는 자기 모습이 없네요. 허구한 날 남만 따라가요. 마치 나처럼….”
올렌카는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반짝이는 눈빛과 생각,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온통 한 곳으로 향한다.
“어제는 ‘파우스트’의 개작을 공연했는데 관람석이 텅 비었어요. 하지만 내일은 ‘지옥에서의 오르페우스’를 공연할 예정입니다.”(극장 지배인 쿠킨을 남편으로 두었을 때)
“전에는 이 지방에서 나는 나무만으로도 장사가 되었는데…극장 같은 곳은 안 가요. 그런 우스꽝스러운 구경을 하고 다닐 여유가 없답니다.”(목재상 푸스토발로프와 재혼한 후)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단 1년도 살 수 없는 여자다. 사랑하는 이들이 그의 곁을 모두 떠났을 때, 그는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잊혀져 갔다.
그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귀여운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있어야만 했다.
관계맺음에 있어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람이 있다.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란 말은 근사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관계의 지속은 자신뿐 아니라 관계를 맺는 대상까지도 해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중 인물인 올렌카를 통해 자신의 관계 패턴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중학생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끔씩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런어웨이 브라이드’(게리 마셜 감독)를 통해서도 또 다른 올렌카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티코의 황금 날개’(분도), ‘까마귀의 소원’(마루벌)을 권하고 싶다.
한이옥 한우리독서치료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