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흥미로운 조정 사례 한 건이 접수됐다. 최근 약 2년 사이에 무려 4차례에 걸쳐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부가서비스 요금이 부과되었기에,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일정한 보상을 요구하며 조정을 신청해 온 사례가 그것이다. 이 경우 부가서비스 요금을 부과한 곳이 경기 부천, 전북 남원 등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음도 흥미로웠지만, 사례의 주인공 나이가 올해 만 80세였다는 사실, 덧붙여 부당 서비스 요금이 부과되었음을 알게 된 연유가 마침 아들이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된 휴대전화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임이 시선을 끌었다.
물론 과다 청구된 요금에 대해서는 즉시 전액 환불 받았지만, 유사한 부당 징수가 네 차례나 반복되면서 마침내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동통신사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다 보니, 이동통신사 지점별로 고객 가운데 고령자 명단을 확보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가서비스에 가입시켜 수입을 확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듣고 보니 이와 유사한 폐해가 적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면서 ‘정보사회’와 ‘고령사회’가 함께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어떠한 충돌이 일어날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보화도 대세요, 고령화도 대세임을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한데 이번에도 서구보다 두세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그 속도가 문제요, ‘무늬만’ 현란하지 콘텐츠는 빈약하다는 것이 관건인 듯하다. 여기에 더하여 정보화와 고령화의 동시적 진행이 개인에겐 모순된 요구를 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속수무책인 듯하여 혼란과 불안이 더해만 간다. 이미 각종 소비품목은 ‘계획된 폐기’와 더불어 수명주기가 단축되고 있는 데다 ‘사오정’이라 하여 퇴출 시기 또한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늘어만 가는 것은 수명이요, 더불어 한숨이란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수밖에.
사회변동의 속도가 급격할수록 집단간 간극은 확대되고, 그로 인한 갈등 또한 심화되며, 희소자원을 보유할 수 있는 기회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이 최대의 피해자로 부상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주목한 선진국에선 정보화로 인한 디지털 디바이드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곧 다가올 ‘5세대 사회’의 세대간 공존 요구에 대비해 정보화와 고령화간의 친화성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한창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고령화될수록 정보통신 기술에 민감하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기에, 정부가 평생교육 차원에서 노인들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가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은퇴한 교사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손자 손녀 세대를 위해 방과 후 학습도 도와주고 사이버 조부모 역할도 담당하는 프로그램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의료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고령 노인을 위해 누구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건강지원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고 한다.
초고속 통신망에서부터 인터넷, 휴대전화의 보급도에 이르기까지 세계 1, 2위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 무대의 뒷면에서는 노인의 둔감함을 활용해 꼼수를 두는 우리로선 선진국 사례가 부럽기 그지없다. 설상가상으로, 치고 오는 디지털 세대가 떠나가는 아날로그 세대를 밀어내면서 그들의 과거 공적에는 애써 눈 돌린 채 과오를 책임지고 하루빨리 물러나라는 요구를 해오니 “키워 보아야 다 소용없느니” 하는 허탈함에 더하여 “노인 안될 이 그 누구랴”하며 슬그머니 괘씸함까지 밀려온다.
장마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일상이 휴가인 노부모의 ‘휴가’까지 알뜰히 챙겨드리는 자식 몇이나 되겠는가만, 폭염에 건강은 하신지 안부라도 여쭙고 정성 담긴 용돈이라도 보내드릴 일이다. 기왕이면 부모님 휴대전화 요금청구서 명세도 챙겨드리고.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