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 6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월북작가 박태원(1909∼1986·사진)의 북한에서의 문필활동과 말년 모습을 기록한 글이 발굴됐다.
월간 ‘문학사상’ 8월호는 박태원의 의붓딸인 북한의 문필가 정태은이 2000년 북한 문학계간지 ‘통일문학’에 기고한 ‘나의 아버지 박태원’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미국 하버드대에 방문교수로 머무르고 있는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에 보관된 ‘통일문학’ 과월호에서 찾아낸 것. 권 교수는 “박태원이 북한에서 어떤 생활을 영위했는지에 대해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글은 ‘43년 가을날에’ ‘력사와 아버지’ ‘음악과 아버지’ ‘지팽이’ ‘빛을 따라’ 그리고 ‘나는 누구의 딸인가’ 등 6개 장, 250쪽으로 구성돼 있다.
1950년 월북한 박태원은 절친했던 친구이자 소설가인 정인택이 월북 직후 사망하자 1956년 그의 처 권영희와 재혼했다. 이 글을 쓴 정씨는 정인택과 권영희 사이의 딸.
박태원은 1958년 백내장 진단을 받고 창작 중단 권유를 받았으나 집필을 계속하다가 결국 1970년에 실명했다. 1972년에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데 이어 1976년에는 전신불수에 언어장애까지 앓게 된다. 그러나 아내에게 구술함으로써 집필을 계속해 1977년 그의 대표작이 된 ‘갑오농민전쟁’ 1부, 1980년에는 2부를 완성했다.
자료 수집 과정에 대해 딸 정씨는 이렇게 묘사했다.
“어머니는 일어는 능했으나 한문은 아버지를 따를 수 없어 애로가 많았다. 가령 ‘밝을 명(明)’자를 보고 날일자 옆에 달월자가 있어요, 하고 어머니가 형상을 하면 아버지는 그건 무슨 글자다, 하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표현 하나, 단어 하나 때문에 반나절을 바치기도 하고 하루를 바치기도 했다.”
1981년 박태원이 구술능력마저 상실하자 아내 권영희가 남편을 대신해 3부를 완성하지만 박태원은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한때 서울에서는 아버지가 북에 들어가 불우하게 살다가 숙청됐다고 알려졌지만 아버지는 그 어떤 숙청이나 박해가 아닌 무서운 질병 때문에 고생했다”고 밝혔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