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생활에서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이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농활은 대학생들의 주요한 사회활동 중 하나였지만 요즘엔 사정이 달라졌다. 농활 대신 계절학기, 어학연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얼마 전 서울대 농활대 철수사건을 계기로 농활의 목적과 한계도 도마에 올랐다.
대학생 농활은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가 연세대의 의과대학과 원주의과대학 농활대 28명과 함께 19∼24일 경기 안성시 서운면 동양촌리에서 진행된 농활 현장에 다녀왔다.
○ 체험하고 이해하자
동양촌리는 얼마 전 내린 비로 과수원 피해가 컸던 곳. 마을회관에 숙소를 마련한 농활대는 다음날부터 바로 비 피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비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불어난 계곡물이 주변의 토사를 쓸고 내려가 둑이 다 허물어지고 과수원 옆 수로가 폭 3m, 깊이 1.5m나 될 정도로 넓고 깊어졌다.
이날 작업은 흙을 날라다 배나무 바로 옆까지 파인 수로에 부어 원래 모양대로 만들고 둑을 다시 쌓는 일. 여학생들이 벌리고 있는 포대에 남학생들은 삽으로 흙을 떠 담고 둑에 얹다보니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과수원 주인아주머니인 이정자씨(69)는 “학생들이 없었다면 복구할 엄두도 못 내고 허물어진 둑을 방치해뒀을 것”이라며 “워낙 일손이 모자라다보니 기구가 있어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반가워했다.
농활 기간 중에는 과수원 복구 작업 말고도 논밭의 잡초 뽑기, 고추 따기, 깨 모종심기 등 일상적인 농사일도 했다. 오전, 오후 합쳐서 하루 7∼8시간.
이 마을 주민이 더욱 기다린 것은 근로시간이 끝나고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의료 봉사활동. 간단한 진료를 하거나 치매 예방법 등을 가르쳐 주는 자리가 마련되자 주민들이 금세 열댓 명 몰려들었다.
“아유, 난 등이 너무 아파서 서 있질 못 하겠어”, “나야 몸 전체 성한 곳이 없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 아픈 부위를 가리키자 학생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한 할머니는 쑥뜸을 뜨는 학생의 손을 잡은 채 “가을에 포도 따줄게 꼭 와. 내년에도 다시 오고…”라며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경기 안성시 서운면 동양촌리를 찾은 연세대 의대 농활대. 낮에는 주로 농민들과 함께 논에서 잡초를 뽑거나(위) 폭우에 무너진 과수원 옆 둑을 다시 쌓는 작업을 했다. 대학생 인턴기자 박현석
○ 逆브나로드 운동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활은 농민들을 의식화하는 ‘계몽운동’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농활의 취지도 변했다.
연세대 원주의대 농활대장 성세용씨(25·의학과 4학년)는 “농촌은 부족한 일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학생은 농촌생활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취지로 90년대 후반 시작된 ‘생활 농활’은 이제 햇수로 5년째를 맞는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농촌 현실을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 ‘농민과 학생의 연대’를 쌓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농활이 일회성, 체험성으로 그치기 때문에 농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
안성 농민회 이관호 사무국장(48)은 “요즘은 오히려 농민들이 학생들에게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쌀 개방 문제 등 농촌현실을 가르치는 수준”이라고 털어놓는다.
이를 위해 농활대는 농활 출발 전 농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쌀 개방과 FTA에 대한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농민들의 말만 일방적으로 듣다 오는 것도 진정한 연대는 아니죠. 이들의 문제나 현실을 인식하고 있어야만 더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아닙니까.” 연세대 의대 농활대장 최훈석씨(25·의학과 2학년)의 말이다.
물론 부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화 농활’ 시절보다는 농활대의 자세가 훨씬 엄격해졌다. 서운면장 김귀영씨(55)는 “예전 같으면 농활대가 만날 술 마시고 데모하고 해서 골치 아팠다”면서 “요새는 농민들이 주는 새참이나 식사도 받지 않고 술도 자제하는 등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밤 늦게까지 계속된 토론
늘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으로서는 농활대가 여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각 대학 총학생회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농촌에서 농활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대학생들의 농활 참여는 계속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북지역의 농활대 참가자 통계만 보더라도 2002년 4045명에서 올해는 그 절반을 조금 웃도는 2637명으로 줄었다.
이번 농활을 실시한 연세대 의대 학생회도 마찬가지 고민. 2001년과 2002년에는 참여 인원이 부족해 2년간 농활을 중단했다. 모두들 연수나 계절학기로 몰릴 뿐 학점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농활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
그나마 올 농활에 참여한 학생들도 28명 중 5명을 제외한 23명이 학생회 소속이었다. 학생회 소속이 아닌 이경화씨(20·원주의대 의학과 1학년)는 “처음엔 농활이 학생회 일처럼 여겨져서 참가를 망설였는데 막상 해보니 농촌의 생활 복지를 지원하는 봉사활동이어서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자의 만족도는 그리 높은 것 같지 않았다. 21일 밤 열린 자체평가시간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참가 학생들의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농민과 제대로 대화도 못하는데 이게 연대냐”, “이제 농활도 달라져야 한다”, “농활 규율이 너무 비효율적이다”….
농활의 목적과 학생들의 역할에 대한 토론은 밤과 함께 깊어졌다. 하나의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땀방울의 정직함, 밥 한 톨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라도 농활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할 것 같다.
취재 및 기사작성 지도=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대학생 인턴기자 권미리(이화여대 영문학과 3학년)espirit0121@hanmail.net
박현석(연세대 영문학과 3학년) hsparkhs@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