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인성기자
이 여름, 영화보다도 더 무서운 공포가 한국을 뒤덮고 있다. 현재까지 21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영철씨(34) 사건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전형적인’ 연쇄살인사건.
‘연쇄살인’은 1975년 미국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 연구팀 로버트 레슬러(67)가 쓰기 시작한 용어로 3건 이상의 살인을 저지르고 사건 사이 시차를 두며 한 번에 한 명씩 살해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는 20년간 연쇄살인사건을 전담하면서 범인상(像) 추정(criminal profiling) 기법을 정착시킨 인물.
범인상 추정기법은 범죄 유형과 범인의 심리, 성장배경, 전후 행적을 분석해 각각의 유형으로 체계화한 다음 다른 사건의 용의자 추적에 활용하는 것. 한국에서는 이달 초 범인상 추정 전문팀을 발족시켰다.
미국의 주요 연쇄살인사건 대부분이 레슬러씨의 손을 거쳤고, ‘양들의 침묵’ ‘카피캣’ ‘X 파일’ 같은 영화나 TV 시리즈가 그를 모델로 삼았다.
동아일보 위크엔드는 레슬러씨를 26일 전화로 단독 인터뷰하고 연쇄살인범의 동기와 발생 원인, 예방법에 대해 들었다. 그는 현재 버지니아 범죄행동연구소에서 범인상 추정 교육과 강력범죄에 관한 민간자문역을 맡고 있다.
○ 살인범은 어렸을 때 길러진다
연쇄살인범은 대개 정신병자로 치부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연쇄살인범의 75%는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의학적으로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라고 레슬러씨는 설명했다.
정상인들보다 지능지수(IQ)가 더 높고 천재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희생자를 원하는 장소로 꾈 만큼 능수능란하고, 증거를 없앨 만큼 치밀하다. 현장을 조작하는 경우도 흔하다. 수법은 살인이 거듭될수록 점차 정교해지고, 흉포해진다.
이들은 왜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잔인하게 살해하는가. 또 연쇄살인 희생자의 대부분은 왜 여성인가. 레슬러씨는 그 이유를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성적 환상’에서 찾는다.
“이들은 여성을 사람이 아닌 욕구 충족을 위한 물건으로 보죠.” 어린 소년들이 연쇄살인의 희생자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밖에 사회나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 생물체를 지배하려는 욕구도 동기가 된다.
살인에 대한 환상은 어렸을 때 생겨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거치면서 정교해지고, 실제 살인으로 이어진다고 레슬러씨는 덧붙였다. 오랫동안 계획해 왔기 때문에 방법이 매우 잔인하다. 통계적으로는 12세 이전에 비정상적 환상을 만들어낸 뒤 청소년기를 거쳐 발전시키고, 25∼35세에 첫 살인을 저지른다. 특히 8∼12세에 자신의 역할모델이 되는 부모가 없을 경우 선악에 대한 판단이 없어진다는 것.
“문제는 이런 환상이 자라는 것을 막을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상실한 가정에서 길러지는 것이죠.”
○ 조기 발견과 예방이 최선
연쇄살인범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희생자를 고른다. 특정 체형과 연령을 고르거나 일정한 머리색이나 하이힐을 신은 여자 등 자신의 성적 환상에 부합하는 대상을 선택한다. 때문에 누구든지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레슬러씨는 연쇄살인범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위험한 성향을 보이는 아동을 일찍 발견해 치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은 교사가 관심을 갖고 식별해내는 것. 미국에서는 일부 진보적인 학교가 이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일단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나면 정상인으로 교화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런 예방책은 매우 중요하다. 레슬러씨는 “한번 살인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면 10∼15년 감옥에 가둬놔도 사회에 나가면 또다시 살인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 유씨는 성기능 장애자인 듯
그에게 유영철씨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내 분석을 부탁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여성으로, 시체를 10군데 이상으로 잘라 유기하는 등 잔인한 수법을 썼으며 이혼한 전처에 대한 복수심에서 살인한 것으로 진술했다는 내용. 레슬러씨는 “현장을 보지 않아 정확한 분석은 불가능하다”면서 “지금의 정보만으로는 성도착자(sexual psycho)로 보인다”고 말했다.
레슬러씨는 범인상 추정가(criminal profiler)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로 ‘균형’을 꼽는다. 사건을 객관화시켜 보지 못하면 분석가 자신이 범인에게 동화될 수 있다는 것.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FBI 요원 스탈링이 렉터 박사의 심리전에 말려드는 것이 한 예.
연쇄살인범을 수없이 만나 본 레슬러씨지만 그들의 불우한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제대로 자라났더라면 자신은 물론 사회에 그토록 끔찍한 해악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며, 괴물을 키운 것은 바로 우리 사회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로버트 레슬러는…▼
―1937년 미국 출생
―미시간주립대와 대학원에서 범죄학과 경찰관리운영학 전공
―1970∼90년 FBI 근무시 흉악범죄예방프로그램(VICAP) 설립
―범죄행동연구소 소장(1990∼현재)
―저서 ‘Whoever Fights Monsters’(1992·한국어 번역본 ‘FBI 심리분석관’) ‘I Have Lived In The Monster’(1997) 등
―그가 분석한 연쇄살인범들 △찰스 맨슨(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부인 등 5명 살해) △존 웨인 게이시(17∼21세 청년 33명 살해) △리처드 체이스(7명 살해 뒤 피를 마심) △‘샘의 아들’ 데이비드 버코위츠(6명 살해) △제프리 다머(17명 살해 뒤 인육을 먹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