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과 여신/레너드 쉴레인 지음 조윤정 옮김/640쪽 3만4000원 파스칼북스
소크라테스는 페미니스트였다. 플라톤의 ‘국가’에 따르면 그는 “우리는 남성과 여성 시민들이 동일한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여자를 남자만큼 신뢰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수컷은 천성적으로 우월하고 암컷은 열등하다. 이런 원리는 인류에게까지 확장된다”고 했다.
그리스의 세 철학자가 보이는 여성관의 차이는, 저자에 따르면 ‘구술적 전통에서 알파벳 문자 전통으로 옮겨간 그리스에서 여성의 점진적 지위 약화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선호했고 글을 쓰지 않았다. 플라톤이 남긴 대화는 말과 산문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구술과 문자 문화의 경계에 서 있는 플라톤은 여성관에서도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적 입장을 보였다. 가장 적대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고전학자 프레드릭 케니언은 “그에 의해 그리스는 말을 통한 가르침에서 읽는 행위로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문자의 도입으로 여신의 위상이 추락했고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가부장제 문화가 정착됐다는 가설을 세운 뒤 두뇌 해부학, 인류학, 역사, 종교적 지식을 동원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외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문자 언어, 특히 알파벳은 선형적, 추상적, 남성적으로 특징되는 좌뇌적 사고를 강화하고 종합적, 시각적, 여성적 우뇌의 기능을 퇴보시켰다. 우뇌적 가치에 대한 좌뇌적 가치의 승리는 여신을 죽이고 가부장제와 여성 천시 사상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가설은 같은 그리스인이고, 같은 신을 섬기고, 같은 언어를 사용했지만 여성관은 달랐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서 입증된다.
스파르타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이와 달리 아테네는 많은 글을 남겼고 위대한 사상가를 집중적으로 배출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여성들은 땅을 매매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스파르타는 여자들이 재산을 가질 수도 처분할 수도 있었다. 아테네 여인들에게는 정절이 미덕이었지만 스파르타 여인들은 여러 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저자의 가설은 TV 영화 비디오 등 영상 매체가 인쇄 매체를 압도하는 세태와 여권 신장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저자도 이미지로의 회귀 현상을 의미 있게 보고 앞으로 좌뇌와 우뇌, 남성과 여성의 가치, 문자와 이미지가 균형을 찾고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제는 ‘The Alphabet versus the Goddess’(1998년)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