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행동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보증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체험되었고 일체의 소설적 허구나 문학의 논리를 초월하였다. 앙드레 말로와 함께 20세기 초 ‘행동주의 휴머니즘’의 문을 열었다.
열두 살의 나이에 처음 비행기를 탄 이래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늘에서 떼어 놓지 못했다.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를 안겨준 20세기의 교통수단은 새로운 발견과 사색의 도구였다.
그는 고공의 직선항로로 솟구쳐 올라 비로소 대지(大地)의 참모습을 보았다. 무수한 별들 사이를 떠돌면서 탯줄처럼 이어진 ‘인간의 대지’(1939년)를 보았다. 그 대지 위에 사람들 사이를 촘촘히 엮고 있는 ‘관계의 그물’을 보았다.
그리고 대지에의 귀의(歸依)와 사랑에 눈을 뜬다. 그 폭넓은 세계 인식과 명상의 깊이는 우주적 감각과 ‘지구애(地球愛)’에 닿아 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반. 2차 세계대전 당시 44세의 최고령 비행사는 코르시카섬 미 공군기지를 이륙한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왕자’(1943년)를 떠나보낸 여우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이제 밀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 밀밭은 어린 왕자의 머리칼을 떠올리게 하니.
어린 왕자는 그의 분신이다.
유난히 숫자를 좋아하는 ‘얄궂은 별’에서 어린 왕자는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어른을 위한 동화’는 시적이고도 철학적이다. 거기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샘물은 순수하고 고결하다.
“생텍쥐페리는 생명보다 영속적인 그 무엇을 찾아 떠나갔다.”(앙드레 지드)
그가 실종됐을 때 프랑스인들은 생텍쥐페리가 별나라의 어린 왕자를 찾아갔다고 통곡했다.
그는 작품에서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예견했다. 승화된 삶으로서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 묘사하고 있었다.
‘야간비행’(1931년)의 주인공 파비앙은 폭풍우를 피해 구름 위로 높이 떠오른다. 연료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그는 달과 별 가까이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니체를 찬미했던 생텍쥐페리.
그는 영원 속으로 실종됐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