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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소록도 25년 봉사 공무원 김이화씨

입력 | 2004-07-30 19:22:00

한센병 환자들의 ‘수호천사’인 김이화씨가 소록도를 찾은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록도=정승호기자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는 이달 초 한 여성 사무관의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나환자를 돌보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참사랑’을 가르쳐 온 김이화(金二華·61)씨가 25년간의 소록도 생활을 접는 자리였다.

남도의 끝자락 작은 섬에서 열린 조촐한 행사였지만 퇴임식장은 소록도 식구들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씨의 보살핌으로 한센병을 치유한 사람들이 다시 섬을 찾았고 그에게서 간호조무사 일을 배웠던 제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소록도병원 환자들은 김씨에게 “끝없는 사랑으로 투병 의지를 북돋아 주신 분”이라면서 구부정한 손으로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씨가 한때 ‘천형(天刑)의 땅’으로 여겨졌던 소록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9년. 부산에 있는 천주교 수도회의 소개로 소록도를 찾았다.

“그때만 해도 소록도는 외로움의 대명사였습니다. 3800여명의 환자가 있었지만 도움의 손길을 찾아볼 수 없었지요.”

별정 5급의 간호조무사 양성소 전임 강사로 발령받은 김씨는 오전에 학생들과 함께 진료 실습을 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알게 됐다.

그가 소록도를 떠나지 않고 25년간을 환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희생과 봉사’라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김씨는 진료시간 외에도 틈나는 대로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찾았다. 굳어가는 팔다리 관절을 주물러주고 그들의 말벗이 돼 줬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환자들은 그의 스스럼없는 발걸음에 차츰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김씨는 “환자를 한 식구처럼 대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외로움의 땅’에도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01년 10월 자원봉사센터가 문을 열면서 김씨는 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까지 센터를 거쳐 간 봉사자만도 1만2000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봉사하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것을 심어준 게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정년퇴임과 함께 섬을 떠났지만 김씨의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랑은 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남 산청군의 한센병 환자 요양시설인 성심원에서 환자들을 돌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환자들을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꼭 만들고 싶어요.”

소록도=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