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와 간염 등에 오염된 부적격 혈액의 유출 피해사례 등 우리나라 혈액 안전관리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올 3월 부적격 혈액 유통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문제점이 확인된 데 이어 7월 29일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 대한적십자사 산하 전현직 혈액원장 등 27명이 부실 혈액관리의 책임으로 기소됐다.
이번 혈액관리 문제는 적십자사 내부 제보자들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애초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본부)측과 적십자사는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는 데 치중하는 듯했다. 만약 내부 고발이 없었다면 국민은 아직까지도 혈액관리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계속 피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무 부처인 복지부의 안전 불감증은 별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복지부가 자체조사를 거쳐 7월 말 발표한 문제점과 대책에는 의약품 제조용 혈장분획제제로 에이즈 양성 혈액이 3건 출고됐지만, 의약품 제조 공정에서 에이즈가 박멸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 과연 그럴까. 복지부 발표대로라면 에이즈 감염이 확인된 혈액이라도 의약품 제조시 열처리를 거치면 안전하니까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뭐 하러 한 해 4000∼5000건의 에이즈 양성 관련 혈액을 폐기하는가. 혈액전문 학자들도 에이즈 바이러스 열처리 공정의 안정성을 100%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에이즈 감염이 확인된 혈액은 혈액 자체이든, 혈액제제이든 복지부측이 나서 폐기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혈액제제는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또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에이즈 반응과 관련해 부적격 혈액으로 분류된 혈액도 수십건 시중에 유통됐다고 한다. 혈액관리법과 에이즈 예방법에 따르면 채혈시 혈액원 선별검사에서 에이즈 감염이 우려되는 부적격 혈액은 폐기돼야 하고,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서 에이즈 감염 여부에 대해 최종 확인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은 채 부적격 혈액을 시중에 유통했다는 것은 혈액원이 현행 법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고, 그 책임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복지부에도 있다. 말단직원의 전산착오나 과실을 탓하기 전에 복지부가 현행 혈액관리법령을 지키도록 지도감독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혈액유통 사고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혈액관리법령에 따라 복지부는 해마다 적십자사의 혈액관리에 대해 감사를 한다. 그러나 복지부는 에이즈와 간염 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혈액이 10년 동안 계속 시중에 유통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복지부의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보여준다. 복지부는 혈액관리의 책임 당사자다. 혈액관리 문제에 대해 적십자사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
복지부의 이번 대책에는 혈액 출고 전에 ‘중복 점검’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혈액관리를 복지부가 직접 관장한다는 자세로 확실하게 안전관리를 실천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국민에게 공개하는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전현희 변호사·대외법률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