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왼쪽)은 3일 국회에서 중진 중심의 기획자문회의를 열고 ‘진실과 화해, 미래위원회’ 설치 등 과거사 규명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여야 내부에서 화해의 물꼬를 트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당내에서 대화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주화파(主和派)’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같은 배경에는 지루한 대치정국 자체가 여권의 부담인 데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국가 정체성 공세가 당내 비주류 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적 카드인 만큼 여권이 맞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3일 “대통령도 팍팍한데, 당까지 나서 야당을 공격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박 대표가 강하게 나오는 것은 당내 비판세력을 겨냥한 것인 만큼 여당이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김덕규(金德圭·열린우리당)-박희태(朴熺太·한나라당) 국회부의장 라인을 가동해 과거사 및 정체성 공방을 일단락지은 뒤 민생국회로 전환하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민병두(閔丙두) 기획위원장도 “조만간 한나라당측 인사와 만나 정국 타개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 대표가 공세의 전면에 나설 경우 자칫 퇴로 없는 ‘정쟁(政爭)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2일 열린 당 상임운영위원회에서도 박 대표가 정체성 공방의 전면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이 전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정체성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질 경우 공방 자체가 정쟁으로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국면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3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헌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실천하면 야당에서도 경제와 민생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이날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은 민생과 국가 안위를 외면한 채 아집과 독선, 쓸모없는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고 있고 국민은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은 당장 정쟁을 멈추고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