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가 3일 내놓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보면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앞두고 농업 정책 방향이 급격히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건국 이후 농업 정책의 근간이었던 ‘추곡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메가톤급’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국회 심의 및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다 당장 소득이 줄어드는 쌀 재배 농민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실질적인 법 개정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어쩔 수 없는 선택=농림부가 추곡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키로 한 것은 점점 커지고 있는 쌀 시장 개방 압력 때문이다. 미국 중국 등 주요 쌀 수출국들이 ‘쌀 재협상’ 등을 통해 국내 쌀 시장을 넘보는 상황에서 추곡수매를 통해 국내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하면 나중에 값싼 수입쌀이 들어왔을 때 더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농림부는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1995년부터 현재까지 쌀 수매가를 12.8% 내렸지만 한국은 26.4%나 올려 쌀 시장 개방이 이뤄지면 충격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추곡 수매자금을 직접적으로 자국산 농산물 가격을 지지해 농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대표적인 감축대상 보조금(AMS)으로 분류한 것도 농업정책 방향이 180도 선회한 또 다른 배경이다.
현재 한국이 쓸 수 있는 AMS는 1조4900억원. 2조1825억원이었던 1995년과 비교하면 46.5%나 줄었다.
이에 따라 올해 쌀 수매 예정 물량은 1995년(960만섬)의 절반 수준인 516만섬으로 줄었다. 어차피 AMS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매제도를 존속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거세지는 농민 반발=이번 개정안이 공개된 이후 농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잇따른 농산물 시장 개방과 쌀 소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경제를 그나마 지탱해온 ‘추곡수매제’가 이번 법 개정으로 없어지면 농업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실제로 추곡수매가는 매년 시중 가격보다 가마(40kg 기준)당 5000원가량 높아 쌀 재배 농가의 소득 기반이 됐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법 개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지역별 규탄대회를 갖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또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도록 압력을 넣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영수(李泳洙) 정책부장은 “추곡수매제를 없애면 쌀값이 하락해 전체 농가의 75%를 차지하는 쌀 재배 농가들이 파산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농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는 만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법 개정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