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씨네리뷰]공포에 떨고 스토리에 깨고… ‘분신사바’

입력 | 2004-08-04 18:06:00

'왕따' 학생이 불러낸 원귀의 잔혹한 복수를 담은 영화 '분신사바' -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안병기 감독의 영화에서는 끔찍한 이미지들이 끔찍한 스토리와 완벽하게 ‘동거’한다. 탄탄한 구성과 스피디한 전개, 막판에 드러나는 기막힌 속사연이 상상력 넘치는 공포 이미지와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그가 ‘가위’ ‘폰’을 통해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삼세번’의 조급증 탓일까. 5일 개봉되는 그의 세 번째 작품 ‘분신사바’는 강력한 공포 이미지가 떠다니지만, 정작 그 뿌리가 돼야 할 스토리는 말라들어 간다.

‘왕따’에 시달리던 유진(이세은)은 친구들에게 저주를 내리고자 원혼을 불러내는 주문인 ‘분신사바’를 외운다. 이후 유진을 따돌렸던 친구들이 잔혹하게 죽어간다. 새로 부임한 미술교사 은주(김규리)는 오래전 죽은 학생 인숙(이유리)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실체에 접근한다.

공포영화가 관객을 ‘습격’하기 위해 숨겨놓는 비밀병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원혼(또는 살인마)이 실체를 드러내는 타이밍이며, 또 하나는 살인의 사유가 밝혀질 때의 충격파다. ‘분신사바’는 두 ‘필살기’를 너무 손쉽고 밋밋하게 써버린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원혼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관객의 호흡을 자기 페이스대로 ‘갖고 놀’ 기회를 스스로 버린다. 컷을 잘게 나누면서 이야기는 스피디하게 전개되지만, 정작 인숙의 죽음에 얽힌 사연(고립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은 그 깊이와 심각성이 부족한 데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마녀사냥’과 화형식(火刑式)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연쇄 죽음의 이미지는 강력한 잔상을 남긴다. 검은 비닐 봉투를 머리에 덮어 쓰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가는 학생들의 최후와 두 눈동자가 밖으로 돌아가는 원귀의 모습은 안 감독의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성을 증명한다.

커다란 눈망울로 쏘아보는 시선 자체로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이세은과 이유리는 ‘호러 퀸’의 자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납작한 시나리오 탓일까. 이들은 비슷한 표정과 비명을 복제하고 반복한다. 비명은 모름지기 스크린이 아닌 객석에서 쏟아져 나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기엔 ‘분신사바’는 너무 조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