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2명을 살해한 이학만씨(35)를 검거하기 위해 벌인 서울 성북구 돈암동 아파트 단지 밤샘수색은 한 초등학생이 수배전단에 적힌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경찰이 이씨의 주민등록번호가 명기된 전단을 배포한 것이 오히려 수사에 혼선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밤 수색 소동=이씨가 돈암동 S아파트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첩보는 3일 오후 이곳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 접속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4일 “돈암동 K초등학교 6학년 이모군(13)이 주변 상가에 붙어 있던 수배전단을 동네 형인 중학생 하모군(14)에게 건네받아 3일 오후 4시반경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임 카페에 접속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군은 격투게임을 다운받고 몇 분 뒤 접속을 종료했다”며 “이씨 명의로 새로 가입된 ID의 인터넷 주소를 추적해 이 사실을 밝혀내고 이군의 집을 방문해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이군이 미성년자인 만큼 형사처벌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에 따라 300여명을 투입해 이틀 동안 아파트 2개동에 대해 수색작업을 벌였던 경찰은 4일 오후 1시경 경찰력을 철수시켰다.
경찰은 “이군이 도용한 ID로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던 시간과 이씨와 연고가 있는 인천에 사는 사람이 이 사이트에 들어온 시간이 일치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벌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사혼선 초래=이 때문에 경찰의 초기 판단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3일 수배전단에 이씨의 주민번호를 공개한 뒤 이를 도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터넷 접속제보가 잇따랐지만 경찰은 이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돈암동 수색이 한창이던 3일 오후 S채팅사이트와 M온라인게임사이트에서 “이씨 명의로 ID가 개설됐다”는 제보가 수사본부에 접수됐고 4일에도 명의 도용과 관련한 제보가 여러 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도피 중인 이씨는 위치 추적을 우려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태.
따라서 이씨의 인터넷 접속상황에 대한 추적이 수사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데도 경찰이 세밀한 고려 없이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섣불리 공개해 스스로 수사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김병철 형사과장은 “수배 전단에 주민등록번호를 실은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흉기 살인의 원인이 부엌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는 격’”이라며 “제보 등 순기능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역기능을 감수하고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경찰서에서는 이씨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전단을 회수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일일이 지우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