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 중인 입양인 사진작가 수전 스폰슬러의 사진작 ‘모든 미국 소녀들’. -사진제공 경희대 현대미술연구소
1980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나 스웨덴에 입양된 한나 알브그렌(24·여). 2년 전 스톡홀름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난해에는 학업까지 중단하고 모국을 찾았다. 스톡홀름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에서 일하는 그는 고향에서 만난 친부모와 형제자매들을 모델로 한 사진 시리즈를 제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입양인 출신 예술가 11명이 만든 작품 40여점을 선보이는 ‘2004 입양인, 이방인’전이 5∼1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금산갤러리와 견지동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다. 경희대 현대미술연구소(소장 박종해)와 시각예술캠프(대표 이태호 홍익대 교수)가 한국인 해외입양 5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주최하는 전시행사.
이 대표는 “태어난 나라와 자란 나라가 다르다는 경험은 정신적인 의문과 방황을 가져다주게 마련”이라며 “이런 내면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치열한 예술혼과 연결돼 입양인 중 많은 사람이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국경과 인종의 경계가 없어지는 요즘 상황에서 이들이 제기한 ‘정체성’의 문제는 또 다른 예술적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화가 송미 허프(29·미국)는 얼굴은 한국 사람인데 몸은 서양인인 드로잉 작품 ‘아시안 베이비’를 통해, 사진작가 수전 스폰슬러(32·여·미국)는 성조기 사이로 한국 소녀들의 얼굴을 겹쳐놓은 ‘모든 미국 소녀들’을 통해 태어난 나라와 자란 나라 사이에서 겪는 이중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출품 작가들이 대부분 20, 30대임을 반영하듯 사진이나 영상 장르의 작품이 많다.
사진작가 타미 주(29·여·미국)는 친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표현한 ‘고향을 찾아서’를 출품했고, 비디오작가인 제인 진 카이슨(24·여·덴마크)은 정체성의 문제를 소외와 인간성 말살로 치환한 ‘오리엔티티(Orientity)’를 선보인다.
8일 오후 5시 경희대 국제대학원에서는 ‘예술과 실천-입양인 예술가에 나타난 정체성 문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문의 02-2689-8425, www.artcamp.or.kr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