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일제강점기 우리의 민족정기를 훼손하려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심어졌다며 종로구 세종로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를 이전하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주일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 이전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이 은행나무가 일제강점기 우리의 민족정기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심어졌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이를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가 종로구 세종로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가 일제강점기 우리의 민족정기를 훼손하려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심어졌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이를 없애고 세종로를 재정비하려는 계획을 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이 연구결과가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도심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은행나무를 이전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은행나무는 일제의 잔재=서울시가 1994년부터 ‘서울 정도 600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1395년 창건 당시 광화문과 근정전 등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은 북한산 백운대와 관악산 연주대를 잇는 직선 축 위에 나란히 세워졌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모인 백운대와 지리산의 기운이 뻗친 연주대를 도읍과 왕궁의 주축으로 삼기 위한 이유.
광화문 밖 예조(현 정부중앙청사) 앞까지 이어지는 이 축을 약 3.8도 동쪽으로 틀어 낸 길이 육조거리(현 세종로)다. 도읍을 계획한 정도전이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피하기 위해 왕궁 앞 큰길을 약간 비켜 배치한 것.
그러나 1927년 일제는 광화문을 경복궁 동쪽으로 옮기고 조선총독부-경성부청(현 서울시청)-남산 조선신사(현 안중근의사기념관 부지)를 잇는 축에 맞도록 원래의 축을 5.6도 동쪽으로 틀고 그 축에 맞는 새로운 큰길(현 태평로)을 만들었다.
이때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태평로 너비를 총독부 건물 앞까지 그대로 이을 목적으로 육조거리 위에 은행나무를 심어 육조거리의 폭을 좁혀버렸다는 것.
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세종로의 은행나무 위치는 1971년 세종로 너비를 100m로 확장하면서 이 은행나무가 길 중앙에 오도록 동쪽으로 10∼15m 정도 옮겨진 것이다.
▽“일제 유산 떨어내자”=서울시는 2006년 완공을 목표로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복원사업과 연계해 세종로를 점진적으로 재정비할 계획이다.
일제가 설정한 축 위에 위치한 현재의 광화문을 원래 위치로 옮기고 은행나무가 있는 중앙분리대를 없애 세종로의 원형을 회복하겠다는 것.
서울시는 중앙분리대를 없앤 자리와 세종로 16차로 가운데 8차로를 합쳐 잔디가 깔린 중앙가로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세종로 도로는 왕복 8차로로 줄어든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한 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은행나무를 심은 것으로 드러난 만큼 마땅히 원래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보호하자”=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연구결과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은행나무를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환경연합의 양장일 사무처장은 “녹지공간 비율이 선진국 도시의 10분의 1 수준인 서울에서 오래된 나무가 들어서 있는 공간을 없애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환경단체 관계자는 “서울시의 이번 조사는 은행나무를 없애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며 “수령이 100년 가까운 은행나무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