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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새집 지으며 찾은 자유…인생2막 둥지 틀었죠"

입력 | 2004-08-05 16:42:00

직접 만든 새집 앞에 선 이대우씨. 그는 “비록 새집이라도 적어도 10년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새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봉평=이진구기자


인생 2막.

사람들은 저마다 2막을 꿈꾸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혹자는 ‘황혼’이라고도 하고, ‘여생’이라고도 하지만 어찌 보면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시간, 진실로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목수 이대우(62).

은퇴 후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에 ‘새집 만들기’를 선택했다. 그저 소일거리로, 또는 취미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프로’가 된 사람이다.

인생 2막을 ‘새집’과 함께 사는 그의 이야기.

○ 디자인부터 꼼꼼하게

선택은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됐다. 97년 겨울 개인사업을 하며 강원 평창군 봉평에 집을 장만한 그는 그곳 마당에서 먹이가 없어 굶어죽은 새들을 봤다. 목공일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한 ‘먹이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집은 먹이를 주기 위한 먹이 집과 살기 위한 살림집으로 나뉜다)

직장을 옮겨 ㈜고합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1년, ‘자유인’을 꿈꾸며 직장을 그만둔 그는 아예 봉평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새집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처음에야 새집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죠. 그냥 주워온 나무로 엉성하게 엮은 거니까요.”

생각 같아서는 지붕과 벽만 세우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프로가 된 지금도 웬만한 것은 2, 3일이 걸릴 정도.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 상태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동생에게 도움을 받았다. 새와 나무의 특성을 배우고 외국 서적을 탐독하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간단해 보여도 디자인을 하고, 작업 순서도를 만들고 나서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순서도 개념을 몰라서 새집 안쪽에 못을 박을 수 없는 일이 허다했어요. 아무리 작은 새집도 못이 30여개는 넘게 들어가거든요.”

이렇게 만든 새집이 지금까지 500여개. 동네 주민이나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줘 지금 그가 갖고 있는 것은 200개 남짓하다.

그중 120여개를 모아서 현재 평창군 도암면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이달 31일까지 ‘새집 전시회’를 열고 있다.

○ 새들도 냄새에 민감

그가 주로 만드는 새집은 박새, 곤줄배기, 파랑새 등 크기가 참새만큼 작은 새들을 위한 것이다. 이보다 큰 새들은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라고나 할까.

“살림집 같은 경우 나무에 달아놔도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지나야 새들이 들어와 살더군요. 안전한지 살펴보기도 하고 페인트 냄새가 빠지는 시간도 지나야 하고…. 새들도 냄새에 민감하거든요. 일종의 새집증후군인가 봐요. 하하하.”

먹이 집이란 지붕만 있고 사방에서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것을, 살림집은 흔히 우리가 아는 새집을 연상하면 된다.

목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새집만은 아닐 텐데 굳이 새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는 벤치도 만들고 그랬죠. 그런데 시골에서 살다보니까 새가 좋아지더라고요. 집에 새집 하나만 둬 보세요. 분위기가 확 달라지죠. 포근하고 정감 있고, 따뜻한 느낌. 그런 거 있잖아요.”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도 ‘새집 증후군(?)’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 새집의 道

새집을 만들고 달아주는 데도 도(道)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일단 새가 먹고 자는 집이기 때문에 10년 이상은 견딜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 또 일년 내내 비와 바람, 눈과 햇볕에 시달려도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비싼 수입목재를 사다가 만들거나 몇 년 이상 계곡물에 젖고 햇볕을 받아 뒤틀릴 대로 다 뒤틀린 나무를 사용한다. 계곡에서 구해온 이런 나무들은 더 이상의 뒤틀림도 없고 강도가 단단하다고 한다.

새집은 사람 키보다 다소 높은 곳(2m가량)에 달아 준다. 물론 더 높은 곳에 사는 새들도 있지만 작은 새들은 이 정도 높이에 둥지를 튼다.

나무가 아닌 기둥 위에 새집을 설치할 때는 반드시 철제 기둥을 사용한다. 목재 기둥은 다람쥐나 청설모, 뱀 등이 올라가기 쉽기 때문이다.

새집은 경사면을 내려다보는 남향으로 설치하며 입구 앞이 훤히 트인 곳이어야 한다. 새들은, 특히 작은 새들은 겁이 많기 때문에 달아날 곳이 많아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단다.

“사람이 사는 거나 짐승이 사는 거나 마찬가지죠. 까치가 둥지를 만드는데 나뭇가지가 4000여개가 들어간대요. 사람이 만드는데 까치만도 못해서야 쓰겠어요, 자존심이 있지.”

새집 만들기는 외국에서는 취미 생활로 정착하고 관련 잡지도 여러 가지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다른 분야에 비해 시작 단계여서 그런지 아주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죠. 제도나 형식, 사람들의 간섭에서 벗어난, 만드는 자만의 자유.”

일정한 패턴과 룰이 있는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혼자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만들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창작의 자유. 그는 ‘새집 만들기’에서 그런 자유를 느낀다고 말한다.

“아파트나 집을 지을 때 반드시 새집을 설치하는 조항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이 있으면 새는 반드시 들어와 살게 되거든요. 그러면 지금처럼 도시에서 참새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텐데….”

새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위해서도 새집은 필요하다. 산과 나무를 밀어내고 새를 쫓아낸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오래 살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봉평=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