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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민기자의 酒변잡기]내멋대로 술 마시기

입력 | 2004-08-05 16:42:00


존 포드 감독의 1952년 작 ‘콰이어트 맨’은 아일랜드가 배경인 로맨틱 코미디다. 위스키를 처음 만들어낸 아일랜드는 위스키 숭배자들의 성지와 같은 곳. 이 영화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위스키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가 나온다.

여 주인공인 메리 케이트 다너허(모린 오하라)가 “위스키에 물을 타드릴까요?”하고 묻자 마이클린 플린(배리 핏제럴드)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위스키를 마실 땐 위스키만 마셔. 물을 마실 땐 물만 마시지.”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나온 책을 보면 위스키에 물을 타서 마시라는 위스키 음주법이 나온다. 위스키의 독한 맛을 순화시키면서 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털어 넣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어디 이 세상에 눈치 안 보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 술 마실 때조차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규범과 격식을 따라야 하다니….

와인을 마실 때 글라스의 몸통 대신 다리를 잡아야하는 건 체온 때문에 와인 맛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대체 그 짧은 순간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인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입술을 대지 않고 빨대를 사용하자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친구들과 몇 년 만에 함께 한 여행길에서 종이컵에 따라 마신 와인이 최고였다. 술맛에 관한 한 누구와 어떤 자리에서 마시느냐가 우선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상반기(1∼6월) 위스키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9% 줄어들었다. 위스키 업계는 경기 침체에 최근 무더위까지 겹쳐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날 정도로 고전 중이다. 얼마 전 업계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선 ‘위스키 빙수’라도 개발해 더위를 뚫고 나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농반의 얘기까지 나왔다. 배리 핏제럴드 식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언제 어떤 술을 마시든 자유의지에 맡겨야지 억지로 강요해선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담당자를 앞에 놓고 차마 그 얘기는 못 했다.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