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어울림. 나무와 종이의 탄탄한 조화, 분명하고 절제된 트임과 닫힘. 이것이 우리 한옥의 매력이 아닐까. 사진은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주민 정진성씨가 놀러온 아이들과 담소하는 모습. -전주=조성하기자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 탓일까. 풀 먹여 빳빳해져 옷 품새 확연한 새하얀 모시적삼 차림으로 대청마루에서 앉아 부채질로 더위 식히는 촌로의 모습이 정겹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런 풍경 그리던 중에 문득 전주 한옥마을이 떠올랐다. 그렇지. 널찍한 대청마루, 그 옆 안마당과 사랑채, 빗질 자국 고운 마당 위로 앳된 풍경소리 딸랑이고 툇마루 아래 댓돌 위로 가지런히 놓인 신발…. 염천 무더위에 이런 풍경 하나라면, 글쎄. 예스런 한여름 오후의 망중한이 그리워 전주의 한옥마을을 찾는다. 마침 덕진공원의 연못은 활짝 핀 홍련으로 연꽃바다를 이루니 더더욱 좋을시고.
한옥마을은 경기전(慶基殿·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과 전주천변의 교동과 풍남동(완산구) 일대로 650여채가 밀집해 있다. 이태 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전주시가 예향 전주의 상징처럼 가꿔온 전통문화유적 중의 하나로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에게 더 인기다.
마을 찾기 전 알아둘 것이 있다. 한옥이라면 대뜸 수백 년 된 아흔아홉 칸 고대광실 대가만 생각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수십 칸 큰 집도 있지만 대부분 작고 아담하다. 건축도 오랜 것이 1910, 20년대에 지어졌으며 1950년대 것도 많다.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성벽을 허물고 시내로 진출하자 교동, 풍남동에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키 낮은 처마가 이마를 맞대듯 어깨를 겨누듯 잇대거나 포개진 정겨운 골목 모습만 상상한 이라면 기대를 접어두자. 그런 골목이 없지는 않으나 개중에는 차가 다니는 넓은 길도 있고 한옥 틈에 양옥도 섞여 있으니까.
한옥마을의 중심거리인 태조로(太祖路)를 찾는다. 오목대(梧木臺)와 경기전을 잇는 왕복2차선 도로(500m)의 이 길 양편이 한옥마을이다. 우선 언덕 위의 오목대에 오른다. 정자에 서면 언덕 아래 한옥마을의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인다. 고려 우왕 때(1380년) 이성계 장군이 남원 근방의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무찌른 뒤 귀로에 종친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던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안사(李安社·용비어천가에는 ‘목조’대왕으로 등장)가 살던 이목대와는 지근거리. 태조로는 이런 오목대와 이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을 이으니 이름 그대로 조선 왕업의 탄생지라 할 만하다.
언덕을 내려와 경기전으로 향한 길. 양편으로 예향 전주의 멋과 풍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왼편을 보자. 합죽선 한지 등이 있는 명품관과 공예품 전시관으로 쓰이는 멋진 한옥이 일렬로 서있다. 집과 집 사이에는 정원도 있어 공원 분위기가 난다. 좀 더 나가 전주천변에 이르면 매일 밤 판소리와 춤, 연주 등 전통공연이 펼쳐지는 전통문화센터도 있다.
오른편 한옥마을에는 골목골목에 볼거리다. 전통술박물관(063-287-6305·www.urisul.net), 전주전통한지원(063-232-6591), 정원을 갖춘 체험한옥(숙박) 동락원 등등. 전주시의 전주한옥생활체험관도 근처다. 한옥에 묵고 싶은 사람에게 ‘딱’이다. 토요일마다(오후 8시) 체험관의 대청에서는 판소리 등 공연이 펼쳐지며 매일 아침에는 방자유기에 담긴 구첩반상의 식사가 숙박객에게 제공된다.
한옥마을에서 발품 팔다 쉬고 싶으면 교동다원(063-282-7133)을 찾는다. 차를 마시면서 한옥의 멋스러움을 음미할 수 있는 전통한옥 찻집으로 한옥의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에 놀라고 만다.
전주=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 전주에서 식도락
비빔밥, 한정식,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잔. 식도락 고장 전주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고전’에 치중하면 새것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 전주의 미식문화에서 태어난 ‘갈비전골’도 맛볼 일이다.
▽갈비전골=아리랑하우스(대표 김진오·덕진구 우아1동)의 갈비전골(사진)은 한우 암소의 갈비살만 저며 내어 국물을 부어 끓여내는 전주 버전의 갈비요리(1만3000원). 최근 전주시청 앞에서 이전했다. 비빔밥, 육회도 맛있다. 연중 무휴. 063-241-9300
▽막걸리 집=한 주전자에 1만원인 막걸리를 시키면 안주를 한 상 가득 무료로 내주는 푸짐한 전주 인심이 고스란히 실린 술집. 삼천동 막걸리골목이 가장 유명하고 개중에 ‘용진집’ 명성이 가장 높다. 여주인(홍용자씨)이 직접 장본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맛깔스러운 안주 덕분. 빈 주전자가 늘수록 더 맛난 안주가 나가는데 안주는 그날그날 다르다. 오후 4시에 문 열고 안줏거리가 떨어지면 닫는다. 063-224-8164
○ 한옥체험숙박과 온천
▽전주한옥마을(www.koreanhouse.co.kr)=테마민박 등 안내 △전주한옥생활체험관(www.jjhanok.com)=063-287-6300 △동락원(www.jkhanok.com)=063-287-2040 △한옥 렌털하우스=독채(방2+거실) 20만원. 063-288-1695
▽죽림온천=시내에서 20분 거리. 유황성분의 알칼리성 온천수는 피부에 닿는 순간 미끈거림이 감지되는 특이한 수질. 검은 모래 찜질방, 에스키모 얼음집도 있다. 24시간 개장. 죽림쿠어하우스(www.juklimkurhaus.com) 063-232-8832
○ 패키지여행
전주 덕진공원의 연못을 가득 메운 홍련
8, 10일 출발, 당일 일정. 덕진공원 연꽃∼한옥마을 전통체험(술박물관 한지원 교동다원)∼맛집(아리랑하우스·갈비전골). 3만9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