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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영화파일]권상우-하지원 주연 ‘신부수업’

입력 | 2004-08-05 16:48:00

권상우와 하지원이라는 두 청춘스타에 초점을 맞춘 영화 '신부수업' -사진제공 기획시대


이건 어찌 보면 미리 답을 알려주고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흔치 않긴 해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같이 보수층이 두터운 사회에서, 그것도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에서 성직자를 파계 시키겠는가(프레드 진네만 감독 ‘파계’처럼), 아니면 성직자를 동성애에 빠뜨리겠는가(안토니아 버드 감독 ‘프리스트’처럼). 그렇다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고 해서 천주교 신부와 목사까지 몽땅 등장시켜 주인공 여자와 삼각관계를 만들겠는가(에드워드 노튼 감독 ‘키핑 더 페이스’처럼).

영화 ‘신부수업’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아이들 마음과 같은 영화다. 이미 모범답안이 정해진 영화인 것이다. 기획 당시부터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교시를 받았을 법하다.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서 해방될 것, 모든 엄숙주의를 버릴 것, 10대의 유머 감각을 연구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권상우 하지원의 매력을 저인망처럼 끌어 올릴 것 등등. 그래서 말이 ‘신부(神父)수업’이지 실제로는 ‘신부(新婦)수업’ 같은 영화를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 의도는 비교적 적중한 셈이다. 권상우와 하지원을 내세워 피나는 마케팅이 진행되는 동안 이 영화를 두고 진중하고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테니까.

영화에서 고민과 갈등을 없앤 만큼 허인무 감독에게 남은 절체절명의 과제는 ‘2시간 가까운 긴긴 시간을 어떤 에피소드로 끌고 나갈 것인가’였을 것이다. 에피소드의 인물들도 권상우 하지원 두 청춘 스타의 범위를 되도록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철저하게 이 둘의 영화이지, 아무리 연기력이 좋고 촌철살인의 대사력이 돋보인다 해서 김인문이나 김인권에게 포커스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영화 내내 두 사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봉희(하지원)를 갑자기 천주교 어린이학교 운전기사로 만들고, 어린이들을 태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부당만부당하게 난폭운전을 하게 만들어 규식(권상우)의 간을 떨어지게 하는가 하면, 둘을 서울 남산으로 혹은 장대비속으로 또는 아무도 없는 교실 안으로 이끌어 어떻게든 데이트의 끈을 만들려고 한다. 오죽했으면 감독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극중 규식의 친구인 선달(김인권)을 통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까. “전도가 뭐 따로 있겠어? 전도는 일종의 소개팅이지.” 그래서 허 감독은 영화 내내 이 두 사람을 끊임없이 소개팅 시킨다.

너무나 진부해서 하품이 나오는 얘기인데다 너무나 사소해서 얘기할 이유도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여름 성수기, 아이들이 한창 방학을 즐길 때다. 그 아이들에게 할리 퀸 소설 같은 영화 한 편 선사한다고 해서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오히려 후반부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용서’되기 시작한다. 영화 기획의도에 따른 원초적 한계가 있어 도발과 파격은 용납되지 않을 테지만 감독은 이를 예비 신부의 ‘예비’라는 점에 착안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일탈과 카타르시스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반부에 가면 정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남자 주인공이 신학생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냥 신부로 설정됐으면 허 감독에게 선택 폭은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부수업’은 힘 안 들이고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청춘스케치다. 이 험난한 시절에 극장 안에서 너무 마음 편하고 가볍게 즐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 때쯤 감독은 선달의 대사를 통해 다시 한번 관객들을 안심시킨다.

서품식 직전 여자와 사랑에 빠진 규식이 괴로워하자 선달은 특유의 심드렁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하느님은 다 받아들이신다고. 지금의 그런 너를 한없이 사랑하신다고. 감독의 얘기, 특히 한때 진지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던 유수의 제작자 유인택(기획시대 대표)의 얘기는 바로 그런 것이다. “영화 ‘신부수업’을 보러 와도 하느님은 다 용서하실 것이다, 더욱 사랑하실 것이다”라고. 근데 그건 진짜 복음일까, 아니면 상술일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