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들어 재정지출에 한계가 사라진 것 같다. 향후 20년간 자주국방 비용이 209조원, 농어촌 지원으로 10년간 119조원 등 이미 머리 터질 규모의 계산서가 쌓였으나 정부는 다시 새 수도를 비롯해 20여개의 신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17대 국회는 하반기에만도 수십 개의 선심성 예산지출과 조세감면 입법을 준비 중이다.
1997년 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작년에 165조원으로 늘었고, 금년 말에는 203조원에 이르리라 한다. 지난 8년간 3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국민은 이제 본격적으로 증대하는 국가 빚의 맛만 겨우 보았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듯 “국민 안전과 인간적 삶을 챙기는 주체”로서 국가는 복지, 자주국방, 도시개발, 일자리 창출 등 무소불위로 손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에 보듯 수도이전 비용이 10∼20배 증가하는 정도는 현 정부에 문제 삼을 수준도 되지 않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
일부 집단은 이런 정부에 환호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국가 빚은 누군가가 언젠가 치러야 할 신용카드 빚과 같다. 수도 이전만 해도 세금 적고 충청도에 연고 있는 사람들은 “나는 손해 볼 일 없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정말 불로지대(不勞地代)만 챙기고 자유로울까? 그 종착역에 가서 보면 서민 월급쟁이와 충청도민이 가장 속절없이 당하는 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플레 세(inflation tax)란 원래 저개발국이 경제개발자본을 조달할 때 쓰던 장치다. 할 것은 많고 세수는 부족한 정부가 가장 손쉽게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이 중앙은행에서 돈 꾸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화폐를 증발해 물가가 두 배 상승했다면 모든 금융자산의 실질가치는 반으로 줄어든다. 국민은 세금고지서를 본 적도 없지만 그들의 현금 저축잔액 증권 보험 장래연금의 구매력은 절반이 되고, 그 잃어버린 반액은 국가가 챙기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부자는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정부나 기업은 부채가치가 감소해서 나쁠 일이 없다. 그러나 서민의 알뜰한 봉급과 저금통장은 알맹이 잃은 쭉정이가 된다. 결국 누구의 허리가 더 휠 것인가.
국가경제에 잘 쓰인 세금은 국민소득과 고용증대를 통해 개인을 살찌게 한다. 국민의 담세능력이 커지고 공급이 증대돼 물가안정도 이룬다. 이른바 ‘선순환’이다. 그러나 정권의 자만과 오기, 여론과 인기를 위해 쓰인 돈은 이런 효과가 없다. 반쪽 난 국민의 지갑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불경기와 실직 및 세수감소-재정적자-국가부채 증대로 이어진다. 지금 민간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어 억제된 물가는 인플레 아니면 실업으로 반드시 제값을 할 날이 온다. 이때도 생활고 실직 가정파탄의 짐을 지는 쪽은 감세 면세층의 서민이 될 것이다.
필자에게는 오늘날 충청도에 부는 건설경기가 DJ정부 때 벤처거품을 연상시킨다. 향후 수조원의 토지수용비가 더 풀리면 이 지역에 대토(代土) 수요가 증가하고 투기수요도 가세하면 부동산 시세상승과 건설경기 붐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교육 보건 문화 여가여건은 어떠할 것인가. 민간 직종이나 사업체들도 정부처럼 맹목적일까? 거주비용만 올라가고 환경이 따르지 못하는 도시는 오히려 오려던 사람과 기업까지 기피시킬지 모른다. 만약 이런 사태가 온다면 약삭빠른 외지의 투기꾼 사냥꾼들은 이미 한 타작하고 떠날 것이다. 그러면 거품 꺼진 황폐한 도시에 남아 지붕만 쳐다보는 자는 누가 될 것인가.
▼수도이전 부담 서민이 떠안아야▼
수도 이전은 선순환의 사업인가. 청와대는 수도 이전이 국가경쟁력과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기본이라고도 하고 구시대 지배계급 정리를 위한 작업이라고도 한다. 적어도 한 가지 뚜렷한 것은, 여의치 못할 때 그 비용을 모두 짊어질 자는 정부 정권이 아니라 그 지지계층이라는 사실이다.
정략적 목적이 있는 정권당국은 물론 이런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그 효과를 말하고 인심을 살 뿐이다. 기막히게도 이런 정권의 홍보비용 또한 국민의 지갑이 부담한다.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