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정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컴퓨터는 의원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의원총회’만 해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컴맹’ 의원들은 이제 의견 개진의 기회마저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사이버 의총은 동료의원들의 체면이나 기자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든 서로 자유롭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게 최대의 장점. 그래서인지 초선이 108명에 달하는 당의 젊은 의원들은 ‘신선하다’며 적극 환영하고 있다.
내달 처음 개최될 사이버 의총의 첫 주제는 시름이 깊은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의원 모두가 현실은 백번 이해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는 난제다.
의총 기간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길다. 이슈별로 짧으면 열흘, 길면 한 달 정도까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장기 토론이 벌어진다. 일단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문제는 보름 동안 진행된다. 당 관계자는 “외국 어디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실험”이라고 말한다.
때맞춰 국회 사무처도 의원실의 ‘486 컴퓨터’를 펜티엄급으로 일괄 교체해 주기로 했다. 보안문제는 열린우리당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대목. 당은 의원들이 직접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개별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보내주고, 수시로 이를 바꿀 계획이다.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바로 ‘컴맹’ 의원들 때문이다. 60세가 넘는 의원 중 상당수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다. 당의 한 원로 의원은 “우리야 참여할 수 있나. 컴퓨터를 만져본 일도 없는데. 자기들 멋대로 한다는데…”라며 노여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사이버 의총의 최대 딜레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간의 정보격차로 인한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가 의정공간에서도 현실로 다가왔다. 17대 국회의 특징은 서열파괴. 과거에는 의총 때 중진과 원로들이 가장 앞쪽 좌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관행도 무너졌다. 이래저래 ‘아날로그’ 세대의 소외감은 점점 깊어간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