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유가 상승을 부추겨 온 러시아의 ‘유코스 사태’는 러시아가 국가주도 자본주의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야당을 지원해 온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5일 푸틴 대통령이 정치를 완전 장악한 데 이어 핵심 산업도 직접 관장하려는 과정에서 유코스가 희생양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제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해외투자자들은 러시아 정부의 경제 관련 움직임을 먼저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유가 상승세 진정= 4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9월분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1.32달러(3%) 떨어진 42.83달러에 마감됐다.
영국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X)에서도 9월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94센트(2.3%) 떨어진 39.7달러를 나타냈다.
러시아 정부가 유코스의 자산 동결조치를 해제하고 미국 유류재고가 늘었다는 소식에 수급차질 불안감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 의지를 다시 강조한 것도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가 자본주의 추진=러시아 법무부는 유코스의 밀린 세금(약 7조8000억원)을 추징하기 위해 유코스의 최대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테 가스를 압류했다. 이 자회사의 가치는 300억달러(약 35조5800억원)에 이른다.
앞서 러시아 법무부는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의 유코스 지분 포기 또는 유코스의 또 다른 정유사 지분 헌납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푸틴 대통령은 석유뿐만 아니라 가스, 은행, 통신 등의 장악에도 나섰다. 그는 재선되기 직전인 3월 국영가스공사(가스프롬)의 민영화를 중단했다. 오히려 정부 지분을 37%에서 51%로 늘리고 석유와 전력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최대 국영은행인 스베르뱅크의 민영화도 2007년 이후로 연기됐다. 이 은행은 2만개의 지점망과 러시아 전체 예금의 62%를 갖고 있다. 은행 부문의 장악은 정부가 원하는 산업에 자금을 배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러시아 경제이행연구소 알렉산더 라디긴 연구원은 “러시아 경제는 권한이 민간기업보다는 관료에게 속하는 ‘국가 자본주의’로 향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특권층 출현하나=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이 핵심 산업의 운영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지난주 국영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 회장에 임명된 이고리 세친.
세친 회장의 딸은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을 기소한 블라디미르 우스티노프 검찰총장의 아들과 최근 결혼했다. 이 때문에 세친 회장이 유코스 사태를 주도하고 이 회사 자산을 상당 부분 넘겨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 옛 소련 해체 이후 지리멸렬했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군부 인사들도 정계에 복귀하고 있다.
사회학자 올가 크리슈타노브스카야는 “러시아는 경제력이 지배층에 집중됐던 아제르바이잔이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