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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브레인 스토리’…협력-조화, 두뇌는 ‘교향악단’

입력 | 2004-08-06 17:19:00

개인의 자아와 의지는 대뇌속 물리 화학작용의 산물에 불과한 것일까. 20세기가 뇌의 기계론적 탐구에 몰두했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뇌에 깃든 자아의 정체와 역할까지 탐구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김종성 감수/352쪽 1만5000원 지호

컴퓨터의 기능을 확장하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사운드카드나 랜카드 등을 끼우고, 인터넷에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설치한다. 이때 일부 장치를 제거하더라도 다른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 두뇌도 이런 식으로 작동할까. 옛날에는 그렇다고 믿었다. 컴퓨터가 나오기도 전인 19세기 골상(骨相)학자들은 두뇌가 영역별로 일정하게 역할 분담돼 있어 머리 각 부분의 형태를 보고 특정 기능이 발달한 정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사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보기, 말하기, 기억하기, 상상하기 등 두뇌의 거의 모든 기능은 두뇌 전체의 협업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상호작용의 교향악이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이 복잡한 두뇌세계에 대한 대략의 지도를 겨우 작성했을 뿐이며, 거대한 탐사 여정은 온전히 지금부터 인류의 몫이다.

두뇌의 복잡한 협업과정을 알기 위해 ‘시각’을 예로 들어보자. 망막에 포착된 시각정보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체계에 의해 머릿속에서 중계된다.

A체계는 시각정보 중 ‘움직임’만을 처리한다. 이 기능이 손상된 환자는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지만 정지된 풍경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B체계는 또 다른 두 개의 하위체계로 나뉜다. 하나는 주로 색채정보를, 또 하나는 주로 형태정보를 처리한다. ‘주로’라고 말한 것은 이들 역시 독립적으로는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모든 시각정보가 정상이면서 유독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만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형태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A, B 시각체계 외에도 수많은 다른 정보처리 체계가 종합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본다’는 활동 중에는 눈에서 뇌로 들어가는 정보만큼이나 뇌에서 눈으로 보내지는 정보 또한 많다는 점도 놀랍다. 불완전한 시각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뇌는 기존에 갖고 있는 정보를 눈으로 중계하며, 눈은 자기가 ‘본’ 정보에 우리의 기억이 전해주는 정보를 비교 처리한 뒤 비로소 다시 뇌에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가진 언어기능 또한 두뇌의 협업적인 정보처리 방식을 알려주는 좋은 예다. 대뇌피질의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듣지만 대꾸를 할 수 없다.

반면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환자는 유창하게 단어를 읊조리지만 조리 있는 문장을 말하기 힘들다. 뇌의 좌우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腦梁)이 손상된 환자를 통해 좌우측의 뇌가 분담하는 역할도 알 수 있다. 좌반구가 단어 찾기와 이해를 담당하는 반면 우반구는 배경적 작업, 즉 감정적 색깔이나 뉘앙스를 입힌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뇌의 미래’다. 인간의 뇌가 가진 정보를 컴퓨터로 내려받아 하드디스크나 DVD롬 속에 저장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인간의 기억은 다른 기억과 통합될 때 비로소 존재하며, 마음 역시 몸 전체의 통합적 활동에 의존하는 이상 ‘인간’ 존재를 떠난 독립된 정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 책의 원서는 영국 BBC방송의 다큐멘터리를 기초로 2000년에 씌어졌다. 1990년대에 발전한 개뇌(開腦)수술과 두뇌촬영 기술에 힘입어 최신정보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어 일반인을 위한 종합적 ‘두뇌 백과사전’으로 손색이 없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