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 철도 건널목에 이르렀다. 열차가 곧 통과하니 조심하라는 의미의 경고 종소리가 ‘땡땡’ 울리고 차단기가 내려졌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켠 채 열차가 통과하기를 기다렸다. 이때 누군가가 다가와 창문을 내리라는 몸짓을 했다. 창문을 열자 그는 “차의 시동을 끄라”고 말했다.
필자가 독일 본에서 일할 때 겪은 실제상황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필자는 독일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인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양계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욕감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친하게 지내게 된 독일인에게 나의 경험을 설명하고 이유를 묻자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오염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대답했다.
몇 개월이 지난 뒤 다시 그 철도 건널목을 지날 기회가 있었다. 차 안에서 보니 ‘건널목을 지나기 위해 대기할 때는 차의 시동을 끄라’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었다.
벤츠 BMW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 독일의 내수용 고급 자동차의 경우 10대 가운데 7대 정도에는 에어컨이 달려 있지 않다. 한국에 비해 습기가 적은 기후 탓도 있지만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의 초청으로 이른바 저택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집주인 내외는 식사에 앞서 집안 곳곳을 소개했다.
어디에도 에어컨이나 중앙난방장치는 없었다. 한겨울이면 독일인은 방이나 거실 한 곳에 설치된 작은 돌출형 히터 앞에 옹기종기 모인다. 그러나 한기가 심해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낸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독일인이 한국을 방문해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
쇼핑을 마친 그는 “백화점 안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긴소매옷을 입을 정도로 냉방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이 그렇게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나라냐”고 물었다.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사실상 매일 경신하는 고(高)유가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에너지 절약의 생활화 수준이 낮은 편이다.
에너지시민연대가 백화점 공공기관 등 서울시내 다중이용시설 200여곳의 실내온도를 지난해 7월과 12월 측정한 결과 계절에 상관없이 ‘섭씨 23.1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의 경제형편이 어려운 판에 고유가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가정에서도 승용차 사용을 줄이고 꼭 틀어야 한다면 에어컨의 냉방온도를 낮추자. 전자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아예 전원 플러그를 뽑아놓자.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 수준인 독일인처럼 우리도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한다면 힘겹지만 고유가 시대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김상철 경제부 차장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