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왼쪽 앞)가 8일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코스 중 가장 힘든 15∼33km 구간을 달리며 코스를 점검하고 있다. 뒤는 이명승, 오른쪽은 탄자니아의 존 나다 사야. 해 뜨기 전인데도 섭씨 28도의 무더위 속에서 시범 레이스를 한 이봉주는 “다 같은 조건이다. 그래도 경험은 내가 한 수 위”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아테네=연합
“헉 헉 헉… 꼭 지옥에서 뛰는 것 같아유∼.”
‘봉달이’ 이봉주(34·삼성전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8일 새벽 5시(현지시간)부터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클래식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으로 알려진 15∼33km 지점에서 펼쳐진 18km 시범 레이스.
이봉주는 26km 지점에 이르자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해발 약 500m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을 넘은 뒤였다. 15km 지점인 아테네 외곽 마티말리에서 출발한 지 10km밖에 안됐지만 25km부터 시작된 급격한 오르막 때문에 진이 다 빠진 탓.
“오르막도 오르막이지만 사우나에서 뛰는 것 같았어유∼.”
이봉주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그의 레이스 인생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 완주시간은 1시간2분. 5km당 17분30초∼18분 페이스로 뛰었다. 시범레이스였기 때문에 기록보다는 코스 익히는 데 중점을 뒀지만 이봉주의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루중 비교적 덜 더운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이봉주가 뛰던 시간의 기온은 섭씨 28도, 습도 30%. 섭씨 8∼10도에서 최상의 레이스를 펼치는 마라토너에겐 살인적인 더위였다.
이봉주는 “표고차 200m가 넘는 오르막을 거뜬히 오를 지구력과 마지막 10km의 내리막을 뛸 스피드를 갖춰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2001년 삼성전자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해왔고 이번 아테네올림픽엔 조국 탄자니아 대표로 출전하는 존 나다 사야와 이봉주의 후배 이명승도 “지금까지 뛰어 본 코스 중 가장 어려웠다”며 “무엇보다 한풀 꺾인 날씨인데도 너무 더워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봉주는 “다 같은 조건에서 뛰니까 괜찮다. 그래도 내가 경험은 많은 편”이라며 내심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봉주는 이번이 32번째 완주 도전. 유례가 없는 풀코스 32번 도전에 31번 완주를 했으니 레이스 경험에선 세계 최고인 셈이다.
오인환 삼성전자 마라톤팀 감독은 “25km 지점에서 32km까지가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32km 이후 약 10km에 이르는 내리막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다. 이번에 우승하는 선수는 진정한 마라토너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부상 없이 훈련을 마쳤기 때문에 2시간12분이나 13분대에만 들어오면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봉주는 아테네에서 100km 떨어진 시바에서 마무리훈련을 한 뒤 27일 선수촌에 입촌, 29일 대망의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아테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