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용카드시장은 작년 말 현재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소유 4.2장, 가맹점 500만 곳, 매출액 약 500조원에 이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양산, 카드사 부실 등 부정적 양상이 부각되면서 감사원 감사가 실시돼, 규제개혁위원회를 포함한 정부 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적기대응하지 못한 것이 카드대란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3월 본인은 규개위 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규개위가 길거리 판촉을 막지 않은 것이 카드대란 원인의 하나’라는 지적에 대해 “규개위의 첫 번째 사명은 모든 경제활동을 최대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촉활동의 장소적 규제를 규개위가 반대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카드회사가 신용조사를 소홀히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 소신에 변함이 없다. 기업의 영업활동 장소까지 규제하면 민간주도의 시장경제는 물 건너가고 정부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규제를 저질규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규개위는 나중에 부득이 저질규제를 승인하게 됐다. 그런 규제까지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 낮은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카드사 경영자들이 자초한 것이다. 카드사는 기본적인 신용조사도 없이 시장 확장에 혈안이었다. 주업인 신용판매 수수료 수입보다 부업인 고리대금업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결과 작년 말 현재 16조원에 이르는 대환대출을 상쇄하고도 7조원의 불량채권을 안게 됐다. 카드발행 자체가 신용대출이라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상식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이 카드사를 경영한 것이다. 카드를 경기 진작에 이용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도 비난받아 마땅하나 카드사 경영자의 책임이 제일 크다. 수입보다 많은 외상구매를 하며 빚을 겁내지 않은 일부 국민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카드사 부실에 따른 또 다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카드수수료 인상이다. 10개 카드사가 일제히, 그러나 일률적이 아닌 방법으로, 즉 요식업 숙박업 소매업 등 조직적 저항이 약한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그리고 약자에게는 많게 강자에게는 적게, 최고 85%까지 카드수수료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가맹점 공동이용제도라는 것이 있어 수수료가 비싼 카드사와 거래를 끊으면 다른 카드거래도 자동 단절되기 때문에 가맹점은 카드사 선택권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가맹점들은 수수료 인상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카드사는 원가상승으로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드시장은 5년 전에 비해 5배나 커졌다. 가맹점 수가 늘면 원가도 낮아지는 것이 이치다. 카드사의 주장은 그들의 경영부실을 죄 없는 영세상인에게 전가시키자는 의도로 짐작된다. 수수료 인상은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소비자 부담으로 부실을 털어내는 것은 부당하다. 원가상승 요인은 피나는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로 해결하고, 그동안의 부실은 경영주체 자신의 재산으로 정리하는 것이 정도다. ‘벼룩의 간’으로 빚잔치를 해서야 되겠는가.
박종규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