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출혈성 뇌중풍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콧물 감기약 성분인 페닐프로판올아민(PPA)의 위해성을 알고도 대응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지 않아 PPA 성분 감기약의 판매금지가 상당 기간 지연된 것으로 9일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지적됐다.
▽판매금지 조치 지연=식약청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PPA 성분 감기약이 뇌중풍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은 2000년 11월. 식약청은 사흘 뒤 제약사들에 사용중지를 권고했다. 신속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사실상 형식적인 조치였다.
이후 식약청이 PPA 성분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PPA 성분이 함유된 식욕억제제와 단일제, 1일 최대 복용량이 100mg을 초과하는 복합제에 대한 사용중지 조치를 내린 것은 무려 8개월이 지난 2001년 7월이었다. 게다가 연구계약은 이때부터 10개월이 더 지난 2002년 5월에야 체결했다.
복지부 송재성(宋在聖) 차관은 “식약청이 행정처리와 연구조사 사업을 진행하면서 기간을 단축시킬 여지가 있었으나 업무가 상당 기간 지연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은 불만스러운 반응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FDA 정보 입수 이후 후속 조치가 늦어진 것은 2001년 상반기 동안 PPA 함유량 제한 기준을 얼마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연구계약 체결 과정도 연구계획서가 4번이나 보완되는 등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또 ‘2000년에 FDA가 PPA 사용 금지 조치를 취했을 때 왜 수용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느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와 조건이 다른 미국이 왜 절대기준이 돼야 하는가”라며 “연구조사를 진행한 것은 주체적으로 근거를 갖고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PPA 성분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등지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검토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식약청이 왜 유독 PPA 성분에 대해서만 ‘주체적 근거’를 강조하며 연구조사를 실시키로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부는 그 동안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성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정부가 조치를 취한 경우 대부분 이를 즉각 받아들여왔었다.
때문에 PPA 성분 감기약 판매금지를 둘러싸고 제약회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말끔히 씻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이창보(李昌보) 국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등 외국의 연구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준용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약협회의 연구조사 주관 문제=복지부는 PPA 위해성 연구조사 비용을 제약회사들이 낸 것과 관련해 공정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복지부는 “PPA 연구의 경우 미국 등 외국의 사례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제약협회가 연구사업을 주관토록 했으나 앞으로는 공공성이 큰 사안의 경우 정부 예산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구결과 사전 유출 의혹과 관련해 복지부는 “연구자가 제약협회에 6개월마다 중간보고를 하도록 연구계약서에 명시돼 있었다”며 “앞으로 복지부에 설치할 의약품안전정책심의위원회에서 연구시행 주체 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의약품 유해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 의약품안전정책심의위를 설치하고, 식약청의 조직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조직진단을 의뢰키로 하는 등의 대책도 발표했다.
한편 심창구(沈昌求) 식약청장은 이날 이번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