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 물질의 국경선 월경으로 인한 환경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유럽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대기오염 물질의 월경 문제로 심각한 국가간 갈등을 겪었다.
국경선을 따라 공업지대가 밀집해 있는 미국과 캐나다도 어느 나라가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느냐를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여왔다.
문제는 이런 분쟁이 ‘과학적 입증’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력(國力)이라는 보이지 않는 변수가 있는데다,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환경오염을 문제 삼아 상대국에 “경제성장을 중단하라” “환경기준을 강화하라”고 무작정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흡연, 금연의 개인적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어도 공공지역의 금연을 강제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발 대기오염 물질의 월경 문제는 한국, 일본 등 피해 당사국이 참여한 가운데 논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다자접근방식=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은 1940년 이후 민물의 급속한 산성화 현상에 시달렸다. 스웨덴 과학자들은 그 원인이 영국과 중부 유럽에서 날아온 대기오염 물질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국들은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특히 대표적 오염물질 다량 배출국인 영국은 ‘대기오염 물질 중 50% 정도가 영국에서 건너왔다’는 스웨덴의 주장에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1977년 유엔 인간환경회의(UNCHE)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11개 유럽 국가 중 5개국이 국내 오염물질보다 해외 오염물질로부터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공인된 조사 결과를 계기로 유럽은 갈등을 접고 공동 해결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
1979년 유럽 이외의 국가를 포함해 33개국이 서명한 ‘장거리 대기오염 물질 이동에 관한 협약(CLRTAP)’이 마련됐다. 이어 1985년 이산화황 감축을 위한 헬싱키 의정서가, 1988년 질소산화물 감소를 위한 소피아 의정서가 탄생했다.
▽북미의 갈등 사례=오대호 주변의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대기오염 물질 월경 갈등은 해묵은 현안으로 남아 있다. 캐나다에 내리는 산성비의 50%는 미국이, 미국에 떨어지는 산성비의 15%는 캐나다가 각각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삼림자원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는 산성비 피해가 미국보다 크다. 이에 두 나라는 1978년 ‘장거리 대기오염에 관한 연구그룹’을 결성하고 2년 뒤 산성물질 문제를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등 공조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산성비 피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며 이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두 나라는 1991년 산성비 원인물질의 대폭 삭감을 요구하는 협약에 서명했지만 뚜렷한 이행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염국가가 나서야=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000∼5000달러에 이를 때까지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지난해 1인당 GDP가 1087달러(구매력 기준으로는 4580달러)인 중국의 오염물질 배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최근 10년간 중국 화력발전소의 오염물질 감축을 위해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지원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도 자금 지원에 나설 의사가 있다. 하지만 이 기관들의 자금은 오염원인 중국 정부가 먼저 요청해야 제공된다.
영국은 1985년 헬싱키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또 1994년 이산화황 추가 감축을 위한 오슬로 의정서에 서명하고 2년 뒤에야 이를 비준했다.
미국은 헬싱키 의정서와 오슬로 의정서 두 가지 모두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이 한국, 일본의 ‘수입 고객’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증가분의 60%를 수입했고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한국과 일본은 대기오염 물질 월경 문제를 다룰 때 중국의 반감을 사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홍콩의 한 관리는 “오염물질 월경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출발점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한국정부는 뭐하고 있나▼
중국발 대기오염 물질에 한국 정부가 처음 공식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1995년이다.
당시 정부는 서울에서 한중일 3국이 참가하는 ‘동북아 대기오염 물질에 관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처음으로 중국측에 대기오염에 관한 실태조사와 오염 감축을 요구했다.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된 것은 4년 뒤인 1999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한중일 3개국 환경장관회의에서다. 3국은 산성비 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시아 10개국 공동측정망 구축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산성비에 대한 공동측정은 대기오염 물질이 다른 나라로 월경했을 때 어느 나라에 책임이 있는지를 따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듬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차 환경장관회의에서는 그때까지 반대했던 중국의 동의로 처음으로 3개국이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당시 합의는 동북아 대기오염 물질의 오염원이 어디인지를 3개국이 합동으로 조사해 책임 소재를 밝히자는 것으로 오염물질 월경 문제 해결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샤먼(廈門)과 다롄(大連) 2곳과 한국 4곳, 일본 2곳 등 모두 8곳에 측정기를 설치하고 수집된 자료를 통해 대기오염 물질의 월경 상황을 분석할 모델을 만들게 된다. 이 연구는 2007년까지 진행된다.
환경장관회의 외에는 중국발 대기오염 물질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다자간 틀이 여전히 부족하다. 동북아 6개국(한국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북한) 환경 실무자들이 참가하는 동북아환경협력고위급회의(NEASPEC)가 있지만 중국은 매우 소극적이다.
한국 정부의 방침도 아직 분명치 않다. 환경부는 “한중일 3국의 공동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중국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부 김원민 해외협력과장은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중국에 환경 기술을 전수하고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中 오염물질 태평양 건너 美까지 간다"▼
중국의 공장과 차량에서 배출된 대기오염 물질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동부까지 날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미국 일간 보스턴 글로브가 10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기 오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시 등의 대기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에서 날아온 대기오염 물질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아시아의 오염물질이 미국 동부 해안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미국의 대기가 빠른 속도로 산업화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 연구는 대기오염 물질의 이동 경로를 밝히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미 항공우주국의 DC-8 등 항공기를 동원해 구름 속의 오염 물질을 채취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시작된 이 연구는 이달 말까지 계속된다.
연구팀은 오염 물질에 포함된 할로겐화 탄소가 중국에서만 나오는 점을 들어 이 오염물질이 중국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했다. 오염 물질이 검출된 곳은 대기의 높은 지역이어서 건강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존층에 영향을 미쳐 이 지역의 기후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과학자들은 대기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고 강조해 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3년 전에는 아시아에서 발생한 황사가 미국까지 건너오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제 미국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날아오는 대기오염 물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