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 버거를 패스트푸드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영철씨(왼쪽)는 단호하게 “웰빙 햄버거”라고 응수한다. 이종승기자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누구나 한번쯤 작은 가게라도 해볼까 하는 창업의 꿈을 꾸어본다.
혹시 또 알까, 그러다가 잘 되면 체인점이 생기고 제법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될는지…. 수백개 점포를 거느린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도 처음엔 아주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규모 창업을 하지만 모두 똑같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을 배우지도, 컨설팅을 받지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되는 방법’을 따라간 작은 가게 아저씨들의 ‘작은 경영학’은 무엇일까.
노점에서 출발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서울 안암동 고려대 후문 근처 ‘영철 Street 버거’를 딜로이트 컨설팅의 컨설턴트 오승훈씨(35)와 함께 살펴보았다.
땀과 눈물, 노력과 그 안에 숨은 ‘오너’도 모르던 성공요인.
○햄버거 1000원에 콜라 무제한
오전 11시, 4평 남짓한 점포가 문을 연다. 하지만 3시간 전부터 사장 이영철씨(35)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빵, 고기, 야채, 소스 등 일차분으로 필요한 재료를 들여놓고 은행에 가서 헌 돈을 빳빳한 새 돈으로 바꿔온다.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서다.
“요즘 같은 어려운 때에 새 돈을 받으면 그냥 기분이 좋잖아요.” 그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은행을 다녀온다.
문을 열자마자 불판에 돼지고기 3kg을 볶는다. 이날은 섭씨 34도를 넘는 찜통더위. 불판의 열기로 가게 안의 체감온도는 40도를 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러나 즉석에서 만들어 따끈하게 내놓겠다는 것이 이 사장의 고집이다.
점심시간 전인데도 손님들이 줄을 섰다. 대부분 고려대 학생들. 분명 햄버거인데도 학생들은 “웰빙 햄버거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돈 1000원. 콜라까지 무제한 마실 수 있다. 요즘 세상에 1000원으로 한 끼 ‘때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학생들에게는 값싸고 든든한 것이 최고다.
햄버거 자체는 무척 단순한 편. 잘 데워진 빵에 고기와 소스, 볶은 야채(양배추, 청양고추, 양파)를 듬뿍 넣어 주면 끝이다. 하지만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은 이 과정의 ‘진실함’이다.
○재고 없애 비용 절감
종업원들은 가게 안이나 가게 앞길에서도 절대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화장실이나 건물 뒤에서 안 보이게 피워야만 한다. 유니폼(앞치마와 모자)을 입고 불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 머리카락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모자도 절대 실내에서는 벗으면 안 된다.
‘안 되는 게 왜 이리 많아?’
가게 안에는 의자도 없다. 한가한 시간에는 앉아 있어도 좋으련만. 손님은 서서 먹는데 종업원이 앉아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설명.
재료를 보관하는 큰 냉장고도 이곳에는 없다. 물론 그때그때 약간의 재료를 보관하는 작은 냉장고는 있지만.
필요한 재료는 떨어지기 직전 거래처에서 즉시 납품을 받는다.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방식이 영철버거가 이 가격에 이만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큰 강점이라고 한다.
주 재료 외에 소량으로 쓰이는 재료는 수량 예측이 어렵고 주 재료라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냉장고나 재료창고가 필요하다는 것. 이는 곧 간접비의 증가로 이어지며 결국 제품 가격의 상승을 부르게 된다.
하지만 영철버거는 제품이 한 종류밖에 없는데다 거래처(정육점, 콜라회사, 야채 도매상 등)와 끈끈한 신뢰 관계를 쌓아 필요할 때마다 재료를 수시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조금 확대하면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생산시스템으로 유명한 JIT(Just In Time)의 단순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만남의 장… ‘충성고객’ 늘어나
단 한 시간만 있어도 이 가게가 고려대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동기들끼리의 입소문과 선배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찾고 단골이 되어간다. 이씨는 손님 2000여명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고 한다. 가게는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가 된다.
기업식으로 말하면 ‘충성’고객이 많다는 것. 유행과 맛에 민감한 요즘 세상에 햄버거 단 하나로 4년이나 버틸 수 있게 한 힘이다.
가게가 커지다 보면 지금까지의 장점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수도 있다.
지금은 소규모라서 100% 손으로 만들지만 앞으로는 제작과정을 표준화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수작업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씨 개인으로서는 ‘정과 사랑’이 줄어들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단일 고객군도 현재는 장점이지만 어느 가맹점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다. 가맹점이 전국 40여개로 늘어나다 보니 균일한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다. 상권 특성도 다르지만 이씨는 “모두 나처럼 생각하고 장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재료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양배추 값이 3배 이상 폭등한 상태. 따라서 현재는 개당 200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 많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셈이다.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값을 올리지 않겠다고 학생들과 약속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비용을 줄이려고 고심 중이다. 규모와 분야는 다를지언정 작은 가게 안에도 큰 회사들이 갖는 고민과 숙제가 공존하는 셈이다.
오 컨설턴트는 “현상 유지든, 확장이든, 폐업이든 ‘그냥 장사가 잘 안돼서’라고 체념하기보다 원인과 결과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과정을 아는 것이 소규모 창업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영철버거는?▼
개업 4년 만에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명물로 자리 잡은 햄버거.
‘영철버거’란 이름은 가게 사장인 이영철씨의 이름에서 따왔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독특한 맛으로 각종 매스컴에 등장했으며
지난해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2000만원을 쾌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기 중에는 고려대 앞에서만 하루 2000개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다.
리어카 노점으로 출발한 ‘영철버거’는 지난해 점포를 임대해 가게를 열었으며
지금은 전국 가맹점이 40여개에 이른다. 각 가맹점들은 이씨의 제조법을 토대로
소스만 공급 받아 자체적으로 햄버거를 만든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