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개봉된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는 악당 볼드모트의 옛 모습, 톰 리들을 만나고 그와 자신에게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밀의 방’은 해리가 자기 안에 숨겨진 다중의 본성을 발견하는 이야기였다. 기억을 잃어버린 록허트의 초상 밑에 쓰여 있던, “Who am I?”라는 질문은 해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았다. 상영중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이하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가 거기에 답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해리는 호그와트 행 기차의 어두운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다 디멘터들과 마주친다. 그가 두려워하는 디멘터는 해리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미궁, 마음속의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불안, 충동들을 상징한다.
사실 초기 청소년기에 진입한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 내부에서 감지되는 성적, 공격적 본능들은 마치 디멘터처럼 자기의 일부가 아닌 ‘악한 것’처럼 인식되며, 이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갈등의 주제가 된다. 해리 역시 그런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전편에서 해리는 ‘님부스 2000’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의 빗자루는 초반에 망가져 버린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는, 어린 시절의 환상과도 같은 마법의 빗자루는 (일시적이지만) 그 힘을 다했다. 그 대신 해리는 자의식으로 가득한 동물 벅빅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을 난다.
벅빅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예의를 갖춰 존중해주는 상대와는 조화를 이루지만 그러지 않으면 매우 난폭해지는, 양면성을 가진 동물이다. 해리는 벅빅의 등에 타고 호수 위를 날면서,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내려다본다. 기차 창문에 비친 얼굴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나르시스의 얼굴을 연상시킬 정도로 희열과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해리가 벅빅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 일화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달래서 통제 안에 두는 데 성공하는 경험에 대한 묘사다. 어쩌면 그는 그런 분노와 충동들은 없애고 억누르는 대신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비로소 해리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과 타인을 구해 줄 수 있는 궁극적 힘은 거울 속의 가족도, 어린 시절의 완벽했던 사랑에 대한 기억도 아니며, 자기 안에 있는 가장 빛나는 부분임을 알게 됐다. 이제 해리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세상을 헤쳐 나가며, 심지어는 볼드모트와도 정면 승부를 하게 될 것이고, 사랑에도 눈뜨게 될 것이다.
자기를 통제하는 데 대한 자신감을 얻어 정체성의 탐색으로 이행해가는 것은 청소년기에 두드러지는 과제이지만, 사실 평생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해리에게 열광하고 그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