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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젠 미래를 말하자]獨 "엘리트 키워놔야 든든"

입력 | 2004-08-12 18:48:00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고 공동 노력하는 모습이 부럽더군요. 세계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복득규(卜得圭·42) 수석연구원은 5월 핀란드 울루시를 다녀왔다. 울루는 인구 30여만명의 작은 도시.

북극과 가까워 겨울에는 하루 종일 어둡고 12월에는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추운 이 도시는 지금 ‘첨단의료서비스 도시(메디폴리스)’로 변모해 가고 있다.

‘첨단 기술부국(富國)’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핀란드 정부의 비전 아래 지방정부, 지역 내 대학과 기업 등이 ‘울루 합의 2006’이라는 미래 비전을 마련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 비전은 2006년까지 신약개발, 첨단 의료장비 개발 등 세계 최고의 의료산업도시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변변히 먹고살아 갈 방법이 없는 울루시가 고민 끝에 찾아낸 해법이었다.

해외의 많은 나라들이 실용주의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앞세워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

세계 일류국가들은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한 비전을 세우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변해야 산다”=독일 사회민주당 정권이 지난해 마련한 국가혁신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에는 미래를 준비하는 독일인들의 ‘절박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교육개혁을 통해 세계 수준의 ‘엘리트 대학’을 육성한다는 핵심 과제가 포함돼 있다.

‘브레인 업(Brain Up)!’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과제는 올해 안에 5개의 엘리트 후보 대학을 선정해 2006년부터 5년간 각 대학에 매년 5000만유로(약 700억원)를 지원하게 된다.

독일의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의 평등과 기회 확대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독일 사민당이 미래 준비과정에서 평등이 아닌 경쟁을 선택했다”고 평가한다.

김창환(金昌煥) 한국교육개발원(KEDI) 기획처장은 “독일 사민당과 ‘경쟁’의 조합은 어색해 보이지만 현재 독일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다”며 “독일 정부가 미래 준비를 얼마나 다급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멈추면 낙오한다”=세계 8위의 경제대국 캐나다는 2002년 말 ‘국가혁신계획’을 발표했다.

이웃한 세계 최강국 미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고 전반적인 혁신 능력이 G7 국가 중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은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근무시간을 추가수당 없이 현행 주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일을 조금 더 하는 게 낫다며 정부 방침에 따르는 분위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30만명에 달하는 연방공무원에 대해서도 근무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에서도 ‘과거’보다는 ‘미래 전략’이 화두다.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국내에서는 강하고, 국외에서는 존경받는(Strong at Home, Respected in the World)’ 국가를 모토로 내세웠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달 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에 맞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전망이다.

미국 대선에서도 상대후보 전력을 공격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과거 전력 들추기’보다는 감세정책, 외교정책 등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과거 입장’을 검증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후보의 개인 홈페이지를 보더라도 미래 청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내몰려 있다.

미국 선거를 전공한 이현우(李賢雨) 경희사이버대 영미학과 교수는 “케리 후보가 여러 호재에도 불구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크게 앞서지 못하는 이유는 ‘케리 집권 이후 4년’에 대해 유권자들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유권자와 후보 모두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선거에 임한다”고 말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선진국을 뒤쫓는 개발도상국의 발걸음도 빠르다.

중국 공산당은 2002년 말 2020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사회(풍요롭고 여유로운 사회)’를 세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까지 시장경제 도입을 서둘러 중산층 비율을 18%에서 38%까지 높이고 1인당 국민소득을 2000년 현재 855달러의 약 4배인 3000달러까지 높이겠다는 것.

인도 역시 30개 과제에 대한 2년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02년 말 ‘인도 비전 2020’이라는 미래전략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2020년까지 경제규모를 세계 4위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현오석(玄旿錫) 무역연구소 소장은 “선진국 후진국 가리지 않고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매진하고 있는데 한국만 과거 회귀적 논쟁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리더십이 나라를 바꾼다▼

짐바부웨 무가베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두 사람은 국가 최고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리더십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조적이다. 룰라 대통령의 정책은 브라질에서 ‘희망’으로, 무가베 대통령의 정책은 짐바브웨에서 ‘불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 짐바브웨 독립 때부터 장기집권하고 있는 무가베 대통령은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짐바브웨는 1999년부터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도 520%를 웃돈다.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 때문에 이런 통계조차 실제보다 축소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짐바브웨의 비극’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과거 회귀적’ 정책과 불안한 정치. 무가베 대통령은 불평등한 토지 소유 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90년대 후반부터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백인 소유의 농장을 강제 환수해 재분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 2020년까지의 국가발전계획인 ‘비전 2020’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외국 자본도 등을 돌리고 있다. 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기존 투자마저 회수되는 추세다. 한때 식량 수출국이었던 짐바브웨는 ‘상업 농장’이 사라지면서 식량 부족국으로 전락해 혹독한 경제난을 맞고 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룰라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세 차례 좌절을 겪고 4번째 도전 만에 2002년 정권을 잡았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첫 좌파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다.

서방 언론은 강성 노조 지도자였던 룰라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과 재정 파탄이라는 ‘남미병’을 더욱 도지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서방 언론의 우려와 달리 ‘경제회복’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고 적극적인 투자 유치에 나섰다. 올해 5월에는 400여명의 기업인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브라질 세일’을 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 정부를 이끄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협상가 룰라 대통령의 열정과 실용주의의 융합”이라고 평가했다.

룰라 대통령의 실험이 성공을 거둘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최근 브라질의 경제지표는 룰라 대통령이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브라질 경제는 올해 1·4분기(1∼3월) 2.7% 성장을 했고 연간 4%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리도 안정돼 작년보다 10%포인트가 내려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발표된 미국 에델만PR의 설문 조사결과 브라질은 기업환경 관련 신뢰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특별취재팀